여성이 밤길 혼자 다니기 위험한 사회,

그러나 비상벨도, 관련법도..

○ 아프리카 콩고와 맞먹는 우리나라의 위험한 밤길

지난 2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센터가 180개국을 대상으로 양성평등 관련 사회제도지수(SIGI)를 조사한 결과가 우리나라의 SIGI 지수는 23%로 나타났다. 

SIGI는 ◾가정 내 차별 ◾신체적 자유 제한 ◾생산자원에의 접근 ◾시민적 자유 제한 등 4개 영역에서 각 세부항목별 평가를 통해 산출한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SIGI 지수 23%는 90개국 중 불가리아와 함께 51위에 해당하는 점수다. 

우리나라의 SIGI 지수를 영역별로 보면 가정 내 차별 영역은 수치가 조사된 102개국 중 86위, 신체적 자유 제한 영역에서는 18%로 비교적 불평등 정도가 낮았고, 생산자원에의 접근 중 노동 권리에 대한 법·제도적 체계의 불평등 정도는 100%로 우리나라 전체 조사 항목 중 수치가 가장 높았다. 

주목할 부분은 시민적 자유제한 영역이다. 

밤길을 여성 혼자 걸을 때 안전성이 51%로 응답국가 72개국 중 오스트리아, 콩고와 함께 공동 65위에 머물렀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장면들이 너무나 많다. 

지난 5월 귀가하는 여성을 뒤쫓아가 원룸 빌라에 침입하려고 한 남성의 모습이 담긴 ‘신림동 강간미수 영상’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일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심지어 신림동에서는 5월에 이어 2달 뒤에 비슷한 범죄가 또 발생했다. 

지난 7월 1일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이하 통계 여성의 삶)을 보면 여성 성폭력 피해자는 2007년 12,718명에서 2017년 29,272명으로 10년 간 130%나 증가했다. 

 

○ 여성 1인가구 증가와 함께 늘어난 여성 대상 범죄

성폭력 피해 여성의 증가는 혼자 사는 여성들이 늘어난 것과도 관련이 있다.

‘통계 여성의 삶’에 따르면 올해 여성 1인 가구는 291만4천 가구로 지난해 284만3천 가구보다 7만1천 가구(2.5%) 늘었다. 특히 최근 10년 새 31.4%(69만6천 가구)나 증가했다. 

혼자 살다 보니 위급한 상황에서 주변의 도움을 받기가 어렵고, 여성은 남성보다 신체적 방어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범죄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에서는 안심 귀갓길, 안심홈 등 여성의 안전한 일상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가 안전한 귀가 지원을 위해 구축한 안심이 앱’이 개통 11개월 만에 11만명이 다운로드를 받았다. 서비스별로는 ▴긴급신고 9,781건 ▴귀가모니터링 2만4,064건 ▴스카우트 2,263건으로 총 3만6,108건을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시 안심귀가 앱
서울시 안심귀가 앱

지난 6월에는 안심이 앱으로 긴급신고를 접수한 지 10분 만에 현장에서 음란행위 후 도주하는 현행범을 검거하기도 했다.

여성 1인 가구 범죄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는 서울시 관악구는 여성 1인가구를 위한 안심 사업을 시작했다. 

디지털 비디오창, 이중 잠금장치인 현관문 보조키, 외부에서 침입시 경보음과 함께 지인에게 문자가 전송되는 문 열림 센서, 휴대용 긴급 비상벨 등 총 4종으로 구성된 안심홈 세트 지원과 함께 여성 1인점포 안심벨지원,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등 다양한 사업이 진행된다.

부산시의 경우 여성 혼자 거주하거나 범죄 취약지역을 중심으로 방범용 폐쇄회로(CC)TV가 대폭 확대 설치된다. 

2015년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된 부천시는 안전 사각지대 중심으로 담벼락 도색, LED 조명 설치, 벽화 그리기 등 환경 개선 작업을 진행한다.

울산 동구는 여성 1인 가구 밀집지역인 연립‧다세대‧원룸촌을 비롯, 학생통학로 주변을 안심구역과 안심귀갓길 지역으로 지정해 비상안전벨 13대를 설치했고, 오는 10월까지 35대를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전남지방경찰청은 이미 운영 중인 47곳의 여성 안심 귀갓길 외에 여성들이 자주 이용하는 버스정류장이나 역에서 주택가로 이어지는 통행로 62곳을 추가로 지정해 비상벨이 설치된 다기능 폐쇄회로 TV, 센서 보안등, 위치표시판 등 범죄 예방환경설계 시설을 새로 설치한다.

 

○ 안심귀갓길은 안심 안되고, 따라오는 남성도 처벌 안되고

한편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안심귀갓길은 총 2875개로 파악됐다. 하지만 이 중 2167개(75.4%)의 길에 112신고 안내판과 바닥표시가 모두 없었고, 비상벨이 없는 길도 1221개(42.5%)가 됐다. 

‘여성 안전’을 외치며 거창하게 길을 낸 안심귀갓길의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는 것이다.

시설물 개선도 시급하지만, 홍보도 잘 안된 상태다. 각 경찰서는 여성안심귀갓길 지도를 홈페이지에 게재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신림동 원룸사건도 그렇고, 가해자가 여성을 몰래 따라가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은데, 현행법상 스토킹 범죄는 범칙금 8만원인 경범죄로 분류돼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5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입법예고했다. ‘스토킹 처벌법’은 스토킹 범죄자를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법은 여전히 ‘예고’ 상태다. 

스토킹 행위를 범죄로 인식하고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법안이 처음 발의된 건 지난 1999년 김병태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이 발의한 ‘스토킹 처벌에 관한 특례법안’이었고, 이후 현재까지 총 12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20대 국회에서도 ‘스토킹 처벌법’이 발의됐지만, 3년째 계류 중이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스토킹으로 분류된 범죄 건수는 지난 2014년 249건, 2016년 390건, 2017년 333건, 2018년 544건 발생했고, 올 7월까지 317건이 집계돼 이런 추세라면 지난해 수치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 제정이 지연되는 사이 스토킹범죄 피해자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들 사이에서는 “사람이 몇 죽어나가야 법이 만들어질 거다”는 자조적인 말도 나온다.

올해 초 발생한 화성 동탄 살인사건처럼 스토킹이 살인으로 이어진 사건이 적지 않기 때문에 스토킹 행위를 강력하게 처벌하거나 방지할 수 있는 법안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저작권자 © 웨딩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