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시설 급감, 임신한 순간부터 위험에 내몰려

출처 : 언스플래쉬
출처 : 언스플래쉬

 

○ 산부인과 병·의원이 없는 분만취약지 늘고 있어

“임신을 확인한 순간부터 임신 막달인 지금까지 하루도 마음 편한 적이 없었어요. 지금부터는 거의 비상상황이고요.”

군인인 남편을 따라 강원도의 한 전방지역에서 거주하는 만삭의 임산부 K씨(36세)는 출산을 3주 앞둔 지금 불안감이 극에 달해있다.

근방에 분만실이 있는 산부인과는커녕 진료만 보는 산부인과도 없는 지역의 특성상 임신을 하는 것부터가 큰 결심이 필요했다. 1달에 한번 정도인 정기검진은 불편해도 1시간 거리인 인근 지역의 산부인과에 다녔다. 

하지만 이제는 언제 출산 기미가 보일지, 혹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진통이 오는 건 아닌지, 거리가 먼 분만실을 가는 동안 위험해지지는 않을지, 하는 걱정에 냉정한 판단을 내리게 됐다.

“전주에 있는 친정에 가기로 했어요. 남편도 직업상 야간근무를 하는 날이 있는데, 저를 신경쓰다 보면 일에 지장이 있고, 무엇보다도 제가 고령 초산부라서 위험성이 있으니까요.”

전방지역에 사는 K씨만 이런 걱정을 하는 게 아니다. 전국적으로 산부인과 병·의원이 없는 분만취약지가 늘고 있고, 이런 상황이 지역의 임산부들에게는 불편함을 넘어 위험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 농촌지역, 군 지역의 분만 취약성 높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각 지역의 중심점을 기준으로 가장 가까운 분만 가능 의료기관까지의 평균 직선거리는 서울이 1.1㎞였다. 인천·부산 등 광역시(세종시 포함)는 3.9㎞였고, 도에 속한 시 지역은 8.3㎞로 나타났다. 

또한 광역시 안의 군 지역은 10.4㎞, 도에 속한 군 지역은 24.2㎞로 조사됐다. 대도시에서 중소도시로, 그리고 농촌지역으로 갈수록 분만 취약성이 높아졌는데, 특히 군 지역의 경우 분만기관까지의 거리가 서울의 22배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의 여파로 우리나라 의료계 지도가 바뀌고 있다. 산부인과 수 감소가 가장 두드러지고, 소아과도 줄고 있다. 

1963년 문을 연 국내 첫 산부인과로 한때 국내 신생아의 2%가 태어났던 제일병원이 최근
몇 년간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다가 최근 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 55년간 25만명의 아이가 태어났던 제일병원의 출산건수는 2012년 6808건에서 2017년 4202건으로 5년 사이 38.3%나 줄었다. 제일병원의 상황이 이 정도면 다른 산부인과 병원들은 말할 필요가 없다.

ⓒ웨딩TV - 저출산 문제를 고민하는 방송 ,건강한 결혼문화를 선도하는 언론 (자료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
ⓒ웨딩TV - 저출산 문제를 고민하는 방송 ,건강한 결혼문화를 선도하는 언론 (자료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

 

○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산모가 걱정 없이 출산하도록 해야

산부인과 전공의 기피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은 2017년 104.1%에서 지난해 86.6%, 올해 83.9%로 3년 연속 하락세다. 심지어 산부인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 다른 과로 전업하는 경우도 매년 늘고 있다.

전국 시·군·구 226곳 중 분만 병원이 없는 곳은 지난해 말 기준 48곳이다. 이 중 강원도가 11곳으로 가장 심각한 분만취약지이고, 경북(10곳), 전남(10곳), 경남(6곳), 전북(4곳)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의 이진용 교수팀이 2013년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출산(유산 포함) 여성의 임신 관련 지표를 분석한 결과, 분만취약지일수록 임산부의 유산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강원도 정선군은 분만취약지 중에 임산부의 유산율이 10.3%로 가장 높았다. 이는 일반 지역의 평균 유산율(3.6%)보다 약 3배 높은 수치로 이 지역의 임산부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난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순례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비례대표)은 분만시설 부족과 관련해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산모가 걱정 없이 출산하도록 하는 것이 저출산 극복의 첫 단계”라고 언급하면서 “보건복지부는 분만취약지에서 운영하고 있는 산부인과 의사에 대해 수가 추가지원, 장비지원, 인건비 지원 등 확실한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 고령출산으로 고위험신생아 증가에도 치료실은 부족

의료시설 부족으로 임산부만 위험에 내몰리는 게 아니다. 35세에서 39세 임신 비중이 20%를 돌파해 해마다 고령산모가 증가하면서 고위험신생아도 늘고 있는데, 오히려 치료실은 태부족이다.

지난 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장정숙 바른미래당 의원은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자료를 분석, 지난 해 고위험신생아 4만5455명이 태어났지만, 전국 의료기관에서 운영 중인 신생아집중치료실은 고작 1812병상이라고 밝혔다. 단순 계산으로는 고위험신생아 25명이 1병상을 같이 이용한다는 것이다.

지역별 격차도 컸다. 경북 1병상당 141명, 전남 80명, 충북은 45명이나 됐다. 세종시는 아예 신생아집중치료실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8년부터 신생아집중치료실을 운영하는 지정 의료기관에 예산과 각종 혜택을 주고 있지만, 병상수는 지난해 대비 36개 감소했다. 

이에 장정숙 의원은 “각 지역에 산부인과 전문의가 상주하는 국립 신생아집중치료센터를 설치해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열악한 분만환경이 저출산 부채질 해

저출산과 낮은 의료수가로 인해 산부인과들이 줄줄이 폐업하면서 우리나라 분만환경은 매우 열악해지고 있다. 가까운 곳에 산부인과가 없다는 것은 출산 감소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이는 다시 출산여건 축소로 이어지고, 또 다시 출산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제도 개선과 재정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산부인과 분만실이 없는 지자체는 임산부들에게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인 분만취약지인 강원도는 '응급산모 안심스테이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분만기관과 거리가 멀어 심리적 불안감을 느끼는 고위험 임산부 혹은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의 안전한 출산이 가능하도록 분만기관 인근에 거주지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충북 보은군은 청주의 한 산부인과 의원과 협약해 보은 지역 임산부에게 20% 할인해준다. 또한 산모·신생아 보조 사업에 들어가는 본인 부담금의 90%를 내년부터 최대 50만원 범위 내에서 지원하기 위한 조례 제정도 추진한다.충북 괴산군은 관내 괴산성모병원과 협약을 체결, 외래 산부인과를 설치해 운영 중인 병원에 의사・간호사 인건비를 지원하고 있다. 단양군은 충주의료원에 위탁해 ‘이동 산부인과’를 운영 중인데, 매주 2회 방문, 전용 버스를 활용한 이동 진료 활동을 하고 있다. 

경북 의성군의 경우, 외래 진료만 하는 군내 유일한 산부인과를 분만 산부인과로 전환하기 위한 국비 공모사업을 추진하고, 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 필수 운영비를 추가 지원한다.

초저출산시대에 출산・보육 인프라는 우리 사회가 일정 부분을 부담하는 공공(公共)의 개념으로 가야 한다. 저출산은 사회적 위기이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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