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다반사] 조제핀의 슬프고 행복했던 이야기
[인생다반사] 조제핀의 슬프고 행복했던 이야기
  • 이상수 전 한국일보 기자
  • 승인 2019.11.2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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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다반사多反辭] 인생을 되돌아보니 할 말이 많네

 

조제핀의 슬프고 행복했던 이야기

 

중남미 카리브에 있는 마르티니크섬의 사탕수수농장에서 태어나 병들어 죽은 동생을 대신해서 알렉상드르 드 보아르네(Alexandre de Beauharnais)에게 시집온 조제핀은 파리에서 남편과 같이 투옥되었다가 남편은 혁명정부에 의해서 처형당하고, 자신은 프랑스의 혁명가 로베스피에르(Robespiere)가 처형당한 후에 풀려난 후 창녀가 되어서 몸을 팔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던 중 나폴레옹을 만나 결혼해서 위대한 프랑스의 황후가 된 것이다. 그러나 니폴레옹과의 사이에 아이를 낳지 못하자 폐위당해 말메종(Malmaison)에서 장미를 가꾸다 사라진 여인.  그러나 그녀의 첫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자라서 유럽의 여러 왕가의 혈통을 잇게 되는데...
 

마리 조제핀 로제 타셰 드 라 파제리(Marie Josephine Rose Tascher de la Pagerie)는 중남미 카리브 해(Carribean Sea)에 있는 마르티니크(Martinique)섬의 레 뜨루와 일레(Les Trois Ilets)에서 1763년 6월 23일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부유한 농장주였다. 조제핀은 맏딸이었고, 여동생 캐서린이 있었다.

어느날 조제핀의 숙모는 여름 휴가 때 마르티니크 섬으로 여행왔던 프랑스의 귀족 알렉상드르 보아르네에게 마리의 여동생 캐서린을 시집보내기로 한다. 캐서린과 알렉상드르의 결혼이 성립되면 가문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2살의 캐서린이 열병으로 갑자기 죽어버리자 이모는 캐서린의 언니인 조제핀을 알렉상드르에게 대신 시집을 보내기로 한다. 얼마나 기구한 운명의 장난인가? 병들어 죽어버린 동생 대신 동생의 약혼자에게 시집을 가게 되다니..

1779년 10월에 프랑스에 도착한 조제핀은 그해 12월에 알렉상드르와 결혼을 하고, 그들 사이에는 아들 유진(Eugene) 과 딸 올텐스(Hortense)이 태어난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은 행복하지 못했고, 바람둥이인 알렉상드르는 자주 집을 나가서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곤 했다.

그러던 중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조제핀과 남편 알렉상드르는 혁명정부에 체포되어 구속된다.  그런 후 남편 알렉상드르는 1794년 8월에 단두대(guillotin)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그 후 프랑스의 로베스피에르(Robespiere) 정부가 무너지면서 조제핀은 석방된다. 그녀는 감옥에서 남편을 잃고 홀로 출감하게 된 것이다. 또 한번의 처절한 운명이었다.

살인 정권의 몰락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조제핀은 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더구나 그녀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었다. 그녀는 로즈(Rose)라는 이름의 창녀가 돼 파리에서 몸을 팔기 시작한다. 그녀의 고객들 중에는 바라(Paul Francois Jean Nicolas  Barras)라는 이름을 가진 군인이 있었다.  바라는 조제핀이 싫증나자 부하인 나폴레옹에게 인계한다. 

지금까지 그녀는 로즈로 불리었지만, 나폴레옹은 그녀를 조제핀으로 부르기를 좋아했다. 나폴레옹은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고 수많은 편지를 남겼으나, 조제핀은 나폴레옹에게 사랑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그녀는 아름답게 꾸미고, 나폴레옹의 사랑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했을 뿐.

1796년 조제핀이 32살, 그리고 나폴레옹이 26살 때 그들은 파리에서 결혼을 한다. 시간은 흘러 1804년에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황제로 등극한다. 중남미 카리브의 부유한 농장주의 딸이었던 조제핀은 병들어 죽은 동생의 약혼자에게 시집왔다가 남편이 혁명정부에 의해서 처형당한 후 살기 위해 창녀가 됐다가 나폴레옹을 만나 위대한 프랑스의 황후가 된다. 이만큼 기구한 운명이 또 있을까.

그러나 나폴레옹과 조제핀 사이에는 자녀가 태어나지 않았다. 황실의 대를 이어가는 데 큰 문제가 생긴 것이다. 결국 1810년경 나폴레옹은 황제의 대를 잇기 위해 조제핀과 이혼을 하고 오스트리아의 황녀 마리 루이즈(Marie Louise)와 결혼한다.

조제핀은 이혼 후 말메종 성(Chateau de Malmaison)에서 살게 된다. 그녀는 장미를 좋아해서 그녀의 사망 당시 약 250여종의 장미를 키웠고, 지금까지도 Malmaison의 장미는 유명하다. 1814년 사망한 조제핀은 휘에이(Rueil)에 있는 상 피에르 상 폴(Saint Piere Saint Paul)에 묻혔다. 나폴레옹은 그녀의 사망소식을 엘바(Elba) 섬에서 귀양살이 하면서 듣게 된다.

훗날 조제핀과 보아르네의 자녀들은 성장해 유럽의 귀족들과 결혼을 하게 되고 러시아, 스웨덴, 벨기에, 덴마크, 노르웨이 등 유럽의 많은 왕가에 후손을 남기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결실이라 굳게 믿는 결혼이 본래는 본능 충족과 생존을 위한 제도였다. 인류는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노동력을 결합하기 위해 결혼이 필요했고, 결혼의 주요 기능은 사회적 신분의 유지, 정치적 이해관계, 경제적 안정, 가문의 유지 등 다수의 부수적인 기능을 가지게 되어 때로는 원래의 목적인 사랑이 뒤로 밀리는 경우도 있었다.

 

Today’s quote:

성공한 결혼을 위해서는 둘이 필요하지만, 실패한 결혼에는 한사람으로도 충분하다. (It takes two to make marriage a success and only one a failure.)

 

이상수 | 해양학박사, 전 한국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