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안나 노스 출산 후 당시와 현재 임산부들의 위험이 생생하게 다가와"

소설 '아웃로드'의 작가 안나 노스(출처-더 가디언)
소설 '아웃로드'의 작가 안나 노스(출처-더 가디언)

123일자 뉴욕타임즈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흥미로운 소설 하나가 눈에 띈다. 안나 노스(Anna North)<아웃로드(Outlawed)>이다. 19세기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산파의 딸인 에이다(Ada)가 화자이면서 주인공이다.

미국의 뉴미디어 매체인 복스(Vox)’에서 젠더 전문 선임 기자이면서 작가인 안나 노스는 소설 <아웃로드> 출간과 함께 이 소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출산에 관한 유혈의 역사, 임신 능력으로 여성을 평가하는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 그리고 본인이 출산을 하면서 겪은 심적 변화 등을 영국 가디언의 칼럼을 통해 털어놓았다.

19세기의 출산은 위험한 일이었다. 산모들은 보통 산욕열에 시달렸는데, 이는 자궁에 염증이 생긴 것으로 패혈증과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또 산후출혈로 고생하기도 했는데, 지혈이 안되면 사망할 수도 있다. 자간증(子癎症, eclampsia)을 앓기도 했는데, 이는 혈압이 극도로 상승하여 치명적인 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다. 1900년에는 1000명이 출산하면 그 중 6~9명의 산모가 사망했는데, 이는 현재의 30배 수준이다.

나는 새로운 소설을 쓰기 위한 조사를 하면서 이런 내용을 알게 됐다. 소설 <아웃로드>는 1894년 미국 서부를 가로질러 피해 다니는 산파의 딸이 주인공인데, 이야기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당시의 산부인과에 대한 실질적 이해가 필요했다.

그래서 제왕절개의 역사에 대해 읽었다. 유럽의 경우 제왕절개는 2세기에 살아남은 여성에 대한 보고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1880년대까지만 해도 치명적인 시술이었다. 난자의 발견에 관해서도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난자는 1670년대에 네덜란드 의사 라이너 드 그라프(Reinier de Graaf)와 그의 라이벌 얀 스와머댐(Jan Swammerdam)간의 치열한 논쟁 주제였는데, 드 그라프 박사는 수정한 토끼를 해부해 난자의 존재를 보였고, 얀 스와머댐 박사는 인간 자궁 및 다른 생식기의 해부를 통해 이를 증명하려 했다.

나는 또한 신생아 이유식에 관해서도 공부했는데, 16~17세기 유럽의 이유식은 주로 우유에 담근 빵이었다. 보통 죽그룻(pap boat)’에 담아서 아기에게 먹였는데, 그 그릇이 닦기 어려워서 세균이 온상이 되기 십상이었다고 한다.

이런 지식 대부분은 흥미로웠고, 충격적인 것도 있었지만, 감정적으로 충격을 주지는 않았다.

이런 조사를 바탕으로 며칠간 분만을 참아내는 여성, 유혈이 낭자한 외음부절개술, 분만 중 사망 등에 대해 썼고 그 과정에서 이야기에 공감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잠을 설친 적도 없고, 내가 겪지 못한 다른 경험들처럼 써내려갔다.

그리고 나는 출산을 했다. 나와 아기는 운이 좋았다. 19세기의 기준 뿐 아니라 오늘날의 사정에 비춰봐도 그렇다.

모성사망과 영아사망율이 1900년 이후 급격하게 하락했지만, 여전히 특히 미국에서는 매우 높은 편이다. 그리고 잘못된 외음절개술로 고생하는 여성들은 여전히 너무 많고, 수개월에서 수년이 지나야 회복되는 산후합병증으로 고생하는 여성들도 많다. 그러나 의료진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나는 훌륭한 산전 및 분만 케어를 받는 특전을 누렸고, 백인 여성이기에 제도화된 인종차별을 겪지도 않았다. 미국의 경우 흑인과 인디언 그리고 다른 유색 인종들의 모성사망율은 백인 여성들보다 높다. 그리고 나는 출산으로 인한 트라우마도 겪지 않았다.

출처-아마존
출처-아마존

그러나 나는 이제 이 책을 전과 같은 마음으로 볼 수 없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나는 초고를 거의 끝낸 상태였다. 임신 전이었다면 1주 만에 끝낼 나머지 부분을 완성하는데 수개월이 걸렸다. 그리고 편집과정에서 나는 읽고 또 읽었다.

나는 소설 중 화자의 엄마인 유명한 지역 산파가 지난번에 분만 중 사망한 환자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지는 장면을 끝까지 읽어나갈 수 없었다. 더 힘든 장면은 다행히도 짧은 분량이지만, 출생 직후 사망한 아기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었다.

나는 임신기간과 초기 분만과정에서 불가사의하게도 침착했고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기가 태어나자 나는 뭔가 잘못될 수 있지 않을까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사실로 보였던 19세기 의료의 실제가 생각할 수조차 없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두려움이 됐다.

한편으로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가장 힘든 부분을 끝낸 상태라 다행이었다. 출산 후에 써야 했다면 생각조차 하기 어려워 아마 출산 위험들을 보기 좋게 꾸미고자 했을 것이다. 비록 다시 읽기는 어려웠지만, 이 부분을 빼지는 않았다.

출산을 전후로 나의 심적 태도가 변했다. 무엇보다 나는 전보다 더 화가 난다. 사람들, 특히 여성들을 임신능력만으로 치부해 버리는 문화적 집착에 화가 난다.

임산부는 아이를 담고 있는 그릇처럼 취급됐는데, 의사들도 그랬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신생아의 첫 번째 소아과 진료는 태어난 직후 며칠 안에 잡혀있지만, 육체적으로 가장 트라우마 같은 사건을 겪은 출산한 산모의 진료는 6주가 지난 후이다.

난임을 겪는 사람들, 특히 그들이 여성이 경우 그들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바라보는 태도는 마음을 상하게 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을 이기적이라든가 무감각하다고 여기는 태도도 마음을 상하게 한다.

나는 아기를 낳기 전에도 저널리스트로 임신출산에 관한 글을 써 왔기에 이런 태도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임신을 하면서 보다 깊이있게 느끼게 됐고, 내가 품고 있는 태아보다 나의 정체성이 후순위가 되거나 사라지는 것을 봤다.

그러나 엄마가 되고 나서 생긴 것이 화만은 아니다. 나는 아기가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보다 바람직한 시각을 갖게 됐다. 내가 아기를 낳은 후에 쓴 소설 내용 중에사람들이 임신출산을 위해 찾아오는 장소를 묘사한 부분이 있다.

이 장소는 임신출산을 위한 곳이기도 하지만, 임신중절을 하기도 하고 임신이 안되는 이유를 알기 위해 오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 곳은 깨끗하고 밝다. 분만을 위한 특별한 베개가 있고, 일어나 움직일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기뿐 아니라 산모들과 임신을 못하는 여성들을 보살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번 소설을 출산에 대한 지적 감각으로 시작했지만 감정적인 이해로 끝을 맺었다. 내가 임신과 난임 그리고 임신에 대한 압박을 탐구하기 위해 소설을 시작했다면 그 끝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받을 자격이 있는 보살핌을 받은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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