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하거나 담담하거나 자유롭거나, 각양각색 29세 여주인공들

출처-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홉페이지
출처-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홉페이지

2005, 이전에는 없었던 매우 특이한 드라마 여주인공이 등장했다. 이 여성 캐릭터에 대해 드라마 시놉시스에는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은 29세의 노처녀 파티쉐라는 설명이 나와 있었다.

동네 방앗간 집 셋째 딸, 실연의 상처에 마신 홧술로 7kg이나 불어난 외형, 게다가 이름은 본인조차 김희진으로 개명하기를 원하는 김삼순...그렇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인 김삼순의 모습은 놀랍고도 흥미로웠다.

이전 로맨스 드라마의 여주들은 집안이 안 좋거나 최악의 상황에 처해도 뛰어난 외모,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가녀리고 연약한 모습, 혹은 매력이 넘치는 모습으로 실장님, 팀장님 등 백마 탄 왕자의 구애를 받았다. 김삼순은 이런 기존의 드라마 공식을 깨며 연하의 킹카남 현진헌과 참으로 솔직하고 본능적이며 화끈한 사랑을 이어갔다.

출처-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홈페이지
출처-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홈페이지

제작진은 우리나라 여성의 73%가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한다. 김삼순도 여기에 속한다그녀들은 영화 같은 로맨스를 꿈꾸지만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안다. 열 명 중 일곱 명, 이 땅의 평균 여성들, 이 땅의 삼순이들에게 로맨스를 선물한다고 드라마의 기획의도를 밝혔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평범하면서도 사랑을 꿈꾸되 사랑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런데...<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드라마 시놉시스의 ‘29세의 노처녀라는 대목이다. 그랬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노처녀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됐다.

이 드라마가 방영됐던 2005년의 평균 결혼연령을 보면 남성 30.9, 여성 27.7세였다. 당시에는 결혼적령기라는 게 있었고, 이 시기를 지나면 노처녀 취급을 받았다.

삼순이도 스물 여덟에 실연당하고, 진헌의 레스토랑에 취직한 후 맞선을 보러갔다가 마음에 드는 남성을 만났다. 서로 호감을 보이며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마침 같은 장소에서 맞선을 보던 진헌은 맞선녀를 떼어내기 위해 삼순을 숨겨둔 애인인 것처럼 연기한다.

너무 화가 난 삼순은 진헌에게 소리친다. “내년이면 서른인데 그런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 거 같아요? 당신이 내 마지막 남은 행운을 짓밟아 버린 거라구 이 새꺄!”삼순도 싱글로 서른을 맞이하는 건 두려웠던 것이다.

한동안 29세는 여성들에게 두려운 나이였다. 특히 노처녀의 인식이 강했던 시절에는 여성들에게 서른이 되기 전에 결혼해야 한다는 초조함이 있었다. 그 시절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29세 여주인공들은 어땠을까?

영화 '내 남자친구의 로맨스' 중 한 장면(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내 남자친구의 로맨스' 중 한 장면(출처-네이버 영화)

2004년에 개봉한 영화 <내 남자친구의 로맨스>에서 스물 아홉의 역무원 현주(김정은 분)7년 간 사귄 남자친구 소훈(김상경 분)으로부터 확실한 프러포즈를 받지 못해 걱정이 많다. 사실 소훈은 연인 간의 이벤트나 프러포즈 같은 것에는 무감한 스타일인데, 현주는 소훈의 마음을 아직 얻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기 최고의 여배우가 자기 혼자 소훈을 좋아하는 것을 소훈이 바람났다고 오해하고 그를 되찾기 위해 생쇼에 가까운 투쟁을 벌인다.

현주에게 결혼은 권태롭고 무료한 삶, 그리고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 어느 덧 29세가 된 현실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나고 보면 그 시절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알지만, 그 상황에 빠지면 그런 생각을 하기 힘들다.

2003년에 개봉한 영화 '싱글즈' 포스터(출처-네이버 영화)
2003년에 개봉한 영화 '싱글즈' 포스터(출처-네이버 영화)

이보다 1년 전에 개봉한 영화 <싱글즈>에도 29세 디자이너 나난(장진영 분)이 등장한다. 나난은 몇 년간 사귄 애인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고, 레스토랑 매니저로 좌천되는 등 썩 좋지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씩씩한 나난은 이런 불운에 굴하지 않는다. 잘 나가는 증권맨 수헌(김주혁 분)이 나난에게 반하고, 레스토랑에 매일 들러 눈도장을 찍는다. 뒤늦게 수헌의 관심을 눈치 챈 나난은 오호라! 이게 왠 복덩이!”하면서 새롭게 시작되는 연애를 암시한다.

나난에게 29세는 자유로운 싱글의 한 때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일에 성공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이룰 줄 알았는데, 현실은 일도, 결혼도 해내지 못한 싱글일 뿐이다.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서른 살을 맞는 나난의 모습은 당시 2~30대 여성들에게 대리 만족을 주었다.

SBS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 (출처-드라마 홈페이지)
SBS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 (출처-드라마 홈페이지)

스물아홉 가을, 나는 갓난아이에게 홍역 예방접종을 맞히는 엄마의 심정으로 스스로를 다독였었다. 와라! 서른살, 맞서 싸워주마. 절대 지지는 않을 테다.”

2008년에 방영된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주인공 오은수(최강희 분)는 이렇게 말하며 서른을 맞이했다.

극 중 서른 한 살인 은수는 키 보통, 몸무게 보통, 옷 입는 센스 보통, 학벌 보통, 직장 보통, 연애 경험 보통 등 어디 내놔도 튀지 않는 대한민국 50%의 보통 스펙을 가진 여자다. 그래도 은수는 불평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지긋지긋할 정도의 평범함이 자신이 가진 전부이며, 지켜야 할 전부인 것을 잘 안다.

은수는 무모한 사랑 따위는 꿈꾸지 않는 현실적인 연애관, 결혼관을 갖고 있다. 은수의 스물 아홉은 서른 살로 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2015, 여성의 평균 초혼연령은 30.0세로 통계 작성 이후 처음 30세를 넘어섰다. 남성은 32.6세였다. 통계를 시작한 1990년에는 남성 27.8, 여성 24.8세였으니 25년 만에 평균 결혼연령이 남성은 4.8, 여성은 5.2세 더 높아진 것이다. 가장 최근인 2020년에는 남성 33.23, 여성 30.78세였다.

29세에 노처녀 소리 듣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결혼은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20살이든, 35살이든, 60살이든 본인이 원할 때 하면 된다. 왜 스물 아홉이 여성들에게 특히 더 힘들고고민스러웠는지 옛날 생각일랑 잊고 이 땅의 여성들이 나이 의식하지 않고 당당한 삶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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