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소환한 어제의 오늘-1992년 1월 17일

1992년 자신을 12년간 성폭행한 계부를 남자친구와 공모해 살해한 김보은이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가고 있다.(출처-네이버 블로그)
1992년 자신을 12년간 성폭행한 계부를 남자친구와 공모해 살해한 김보은이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가고 있다.(출처-네이버 블로그)

199211721세의 여대생 김보은과 남자친구 김진관이 김보은의 계부인 김영오(당시 53)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김영오는 김보은의 어머니와 재혼한 후 김보은이 9세 때부터 상습적으로 강간했고, 거부하면 폭행하고 칼로 살해 협박을 일삼았다. 모녀의 신고로 경찰이 충돌하기도 했지만, 김영오가 청주지방경찰청 충주지청 총무과장이었기 때문에 그냥 돌아가곤 했다.

김보은이 천안의 한 대학에 진학해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 후에도 김영오는 친모를 통해 김보은을 불러내 강간하는 일이 이어졌다. 김보은은 남자친구인 김진관에게 이런 사실을 털어놓았고, 김진관은 김영오를 찾아가 김보은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 것을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김영오는 이를 무시하고 오히려 두 사람을 조롱했다.

김진관은 마지막 담판을 짓기 위해 칼을 들고 김영오를 찾아갔지만, 김영오는 가만 안둔다. 다 잡아넣겠다며 저항하자 김진관은 그를 찔러 살해했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여성단체들은 두 사람의 구명운동과 함께 성폭력과 가정폭력 규탄시위를 벌였고, 두 사람의 변호를 위해 나선 변호사가 무려 22명이었다.

변호인단은 정당방위를 주장했으니 인정되지 않아 1992년 말 김보은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 김진관은 징역 5년이 확정됐다. 이후 김보은은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사면, 복권되었고, 김진관은 잔여형의 절반을 감형받아 1995년 만기 출소했다.

김보은김진관 사건은 앞서 1991년 김부남 사건 당시부터 제기됐던 성폭력특별법제정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김부남 사건은 9살 때 자신을 성폭행했던 가해자를 21년 만에 살해한 사건으로 김씨에게는 살인 최저형량 5년의 절반인 징역 26개월에 집행유예 3, 치료감호 1년이 선고됐다.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성범죄를 다룬 영화 ‘도가니’(2011)는 성범죄 친고제 완전 폐지의 계기가 됐다.(출처-네이버 영화)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성범죄를 다룬 영화 ‘도가니’(2011)는 성범죄 친고제 완전 폐지의 계기가 됐다.(출처-네이버 영화)

199415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그해 4월부터 시행됐다. 4촌 이내의 친족 강간과 장애인에 대한 준강간은 비친고죄(피해자의 신고 없이도 사건 진행이 가능)로 정해 제3자가 고소할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다.

이후 성폭력특별법은 1997년 개정에서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을 비친고죄로 하고, 친족에 의한 성폭행의 친족 범위를 ‘4촌 이내의 혈족과 2촌 이내의 인척` 으로 확대해 의붓아버지나 연하의 친족에 의한 성폭력도 처벌을 가능하게 했다. 친족에 의한 강간은 7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하고, 강제추행은 5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한다.

1998년 개정에서는 몰래카메라에 대한 처벌규정을 신설했다. 2011년에는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폭력범죄의 공소시효 조항이 삭제됐고, 2020년 개정에서는 불법 성적 촬영물의 소지ㆍ구입ㆍ저장ㆍ시청에 대한 처벌규정을 신설했다.

성폭력에 대한 법집행이 강화되고 있지만, 가정 내 성범죄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가정은 성폭력, 가정폭력 범죄가 은폐되기 쉽고, 그래서 가해자가 법망을 피해갈 수 있는 치외법권의 공간이다.

그렇다 보니 김보은 사건처럼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피해자가 결국 직접 가해자를 단죄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2022년에는 의붓딸을 9살 때부터 12년간 343회나 강간하거나 추행한 계부가 항소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이 경우는 피해자가 도움을 받아온 면사무소 사회복지사에게 피해사실을 털어놓아서 알려졌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어린 시절 친구와 놀던 기억 대신 오로지 피고인의 범행만 기억하고 있고, 수백회가 넘는 범행 모두 기억해 진술했다어린 영혼을 탐욕의 대상으로 삼아 집착하고 감시하며 범행이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다른 사람들을 폭행하거나 협박한 피고인에 중형을 선고함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또 지난 3일에는 8세 친딸에게 성범죄를 저질러 옥살이하고도 출소 후 또 같은 범죄를 저지른 40대 남성에게 법원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경찰이 집계한 3년간(2019-2021) 친족에 의한 성폭력 피해건수 및 입건내역을 보면 피해건수는 2019400, 2020418, 2021443건으로 3년 새 9.8% 늘었다. 반면 3년간 발생한 친족 성폭력 피해건수 1261건 중 실제 구속된 인원은 225명으로 구속률은 불과 17.8%였다.

친족 성폭력의 피해자 대부분이 미성년자로 믿고 의지해야 할 가족에게 끔찍한 피해를 당하는 것은 물론 가족이라는 이유로 피해사실을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친족 성폭력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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