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의 이유

미국으로 유학간 딸과 아내를 8년간 뒷바라지한 50대 기러기 아빠가 낸 이혼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였다. 201510월의 일이다.

법원은 부정행위 등 혼인파탄의 요인은 없었지만 장기간의 별거와 아내의 귀국 거부 등으로 남편이 오랫동안 힘들고 고독했으며 이로써 부부간 정서적 유대감을 상실했다고 판단했다.

부산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던 A(54)씨는 2006년 딸(당시 15)의 교육을 위해 아내 B(59)씨가 함께 미국으로 간 후 이들의 교육비와 생활비를 도맡았다.

A씨는 200912B씨에게 경제적으로 힘들다. 친구들에게 돈 빌리는 문제로 우울하고 외롭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20103월에는 아내에게 국내로 돌아올 것을 권유하는 이메일을 보냈고, 20111월에는 이혼을 요구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B씨는 20123‘80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이혼에 동의한다는 이메일을 보냈고, A씨는 5000만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B씨는 여러 이유를 내세워 귀국을 미뤄 결국 20062월에 미국에 간 후 20146월까지 8년 넘게 한번도 국내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사이에 A씨는 2번 미국에 가서 딸과 아내를 만났을 뿐이다.

부산가정법원 가사2단독 김옥곤 판사는 장기간 별거와 의사소통 부족 등으로 부부간 정서적 유대감이 상실돼 혼인 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남편을 충분히 배려하지 않고 장기간 귀국하지 않은 아내에게도 혼인 파탄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 과정에서 B씨는 남편이 다른 여성과 부정한 행위를 하고 있어 이혼을 요구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증거 부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소송의 경우 큰 틀에서 보면 귀국을 거부한 채 남편을 경제적, 정서적으로 힘들게 한 아내의 잘못이 크지만, 혼인파탄의 직접적 요인이 없는 만큼 파탄주의적 시각에서 판결이 내려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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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법은 1965년 대법원 판례를 통해 유책주의 원칙을 채택해 이혼을 다루고 있다.

유책주의는 부부 중 어느 한쪽에 이혼의 책임이 있을 때 다른 한쪽이 이혼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어느 한쪽의 잘못이 명확해야만 이혼이 인정된다. 이는 잘못을 하고 부정을 저지는 쪽의 이혼 청구를 제한해 피해를 입은 쪽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반면 파탄주의는 혼인관계가 사실상 파탄에 이르렀다면 유책배우자라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유책주의를 채택했던 과거와는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고, 부부 어느 한쪽의 잘못으로 보기 힘든 이혼도 늘고 있기 때문에 파탄주의를 채택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실제로 법원은 혼인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났다면 그 원인이 어느 한쪽에 있지 않거나 이혼청구자의 책임이 상대방의 책임보다 더 무겁지 않는 한 이혼을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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