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이야기
영화 <타이타닉>은 실제 발생한 사건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재해석한 로맨스 영화다. 1911년 건조된 타이타닉호는 지상 최대 규모의 유람선으로 1912년 4월 10일 ‘절대 침몰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선전문구와 함께 세계 여러 곳곳을 경유하며 최종 목적지인 미국의 뉴욕으로 항해를 시작한다.
그러나 4일 뒤인 14일 23시 40분 빙산과 충돌한 타이타닉호는 2시간 20분 만에 완전히 침몰하게 된다. 사망자의 수는 무려 1,513명에 이르렀고 대다수가 하층 객실의 이민자들이였다. 단 711명뿐인 생존자는 주로 상층 객실의 부유층 사람들이었다. 당시 1등석 티켓 비용은 현재의 가치로 약 1억원에 육박했다고 한다.
영화 시작 부분 바다 속 깊이 잠들어 있는 타이타닉호에서 보물을 탐사하고 있는 탐사대의 모습과 내부 인테리어, 소품 등을 통해 타이타닉호가 얼마나 호화로운 유람선이었지를 짐작할 수 있다.
영화에서 부호인 칼은 약혼녀 로즈에게 ‘대양의 심장(The Heart of the Ocean)’으로 불리는 목걸이를 선물한다.
‘대양의 심장’은 56캐럿짜리 호프 다이아몬드로 만든 목걸이다. 호프 다이아몬드는 인도에서 발견된 약 45.52캐럿의 청색 다이아몬드로 1668년에 프랑스의 루이14세가 왕관의 보석으로 쓰기 위해 구입했으며 1792년에 도난당해 사라졌다가 1830년에 아일랜드의 호프(Hope, H.)가 소유하면서 이 이름이 붙었다. 영화에서는 루이16세가 걸었던 목걸이, ‘르 꾀르 드 라 메르’ (Le ceur de La mer)’로 언급된다.
호프 다이아몬드는 그 이름과는 다르게 불행을 부르는 세계 4대 ‘피의 다이아몬드’ 중 하나다. 다이아몬드를 소유하거나 착용한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실각하는 등 불행을 겪었기 때문이다. 현재 호프 다이아몬드는 미국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국립자연사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16개의 화이트 다이아몬드가 가운데의 블루 다이아몬드를 감싸고 있으며, 목걸이 체인 또한 46개의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졌다.
영화에 등장한 ‘대양의 심장’은 촬영용으로 제작된 모조품이며 다이아몬드 대신 지르코니아가 세팅돼 있다. 그러나 영화가 흥행하면서 ‘대양의 심장’이라는 이름의 목걸이가 실제로 제작됐다. 170캐럿의 사파이어에 65개의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이 목걸이는 영화의 주제곡 <My heart will go on>을 부른 셀린 디온이 아카데미 시상식에 착용하고 나왔다.
‘대양의 심장’은 영화 속에서 짧은 시간 노출된 장신구였지만, 큰 관심을 끌며 영화의 상징이 됐다.
영화 속에서 장신구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장신구는 주인공의 서사를 더 확실하게 나타내는 복선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호프 다이아몬드가 가진 비극적인 사연으로 인해 로즈가 ‘대양의 심장’을 착용함으로써 비극적인 내용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영화에는 몰락한 귀족 가문의 딸이라는 로즈의 인물 설정에 맞게 ‘대양의 심장’ 외에도 다양한 장신구가 등장한다. 그 중 하나가 나비 모양 머리장식이다.
이 머리장식은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잭과 로즈가 뱃머리에서 팔을 벌리고 바다 위를 나는 기분을 느끼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로즈가 착용하고 있다. 또 탐사선이 발견한 로즈의 물건 중에 약 5초 간 클로즈업 샷으로 등장하며, 101세의 로즈가 소중히 어루만지며 과거를 회상하기도 한다.
이 장신구 또한 ‘타이타닉 머리빗(titanic hair comb)’, ‘타이타닉 나비빗(titanic butterfly comb)’ 등의 이름으로 수많은 모조품이 생산되고 있다.
장신구가 영화에서 암시적인 요소가 되는 또 다른 이유로는 심미적인 요소를 꼽을 수 있다.
영화 속 장신구는 착용했을 때 자연스럽게 관객의 시선을 머물게 하는 효과와 함께 과거의 어떤 사건과 연관이 있으며 당시에 누가 소장하였는가, 주인이 왜 바뀌게 됐는가 등 이야기의 당위성을 구체화하며 결말을 암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영화는 복합예술로 시각적인 요소가 매우 중요하고 이런 이유로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장신구는 영화의 소품으로 자주 등장한다.
보석의 가치는 희소성 있는 원석과 그것을 가공하는 기술이 합쳐져서 만들어진다. 가공 전인 원석 그 자체는 희소성 있는 돌덩이에 불과하다. 가치를 불어넣는 기술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한편 2004년 콩고공화국 불법 다이아몬드 거래, 2010년 앙골라 북동부 카푼포 광산 등에서 이뤄진 아동노동착취 논란 등 다이아몬드 같은 화려한 보석 뒤에 어두운 이면을 생각해봐야 한다. 국제사회는 피로 물들지 않은 깨끗한 다이아몬드를 생산하겠다는 킴벌리 프로세스를 제시했지만 이 효과는 미비이다. 아직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동을 착취당할 그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바란다.
서진환 조형디자인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