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연인이었던 수잔 발라동을 그린 '세탁부'

툴루즈-로트렉 증후군이라는 질환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약 1만 명 중 1.7명에게 발병하는 희귀 질환인데, 왜소증의 일종으로 뼈가 잘 부서지고 외형적인 이상이 나타난다.

이 질환은 19세기 프랑스의 화가인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로트렉(1864-1901)은 프랑스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귀족 가문에서 백작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럽의 왕실이나 귀족 가문은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을 반복하면서 유전병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나타난 주걱턱이었다.

로트렉이 걸렸던 왜소증도 유전병의 결과였다. 태어날 때부터 왜소하고 병약했던 로트렉은 12, 14세 때 낙상사고를 당하면서 허벅지 뼈가 부러진 후 성장이 멈춰 150cm도 안되는 작은 키에 짧은 팔 다리,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장애를 갖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을 무시하고 경멸했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유명 화가에게서 교육을 받도록 후원했다.

독립 후에 몽마르트 언덕에 정착한 로트렉은 물랭루즈의 포스터를 그리며 생계를 유지하면서 무용수, 매춘부, 서커스 단원, 노동자 등 가난하고 차별받던 사람들을 주로 그렸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신체와 외모를 가진 로트렉은 일반 여성들과는 사귈 수 없었다. 그래서 윤락가를 드나들며 성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친구들의 소개로 16세의 매춘부인 마리 샤를레를 만났다. 그녀와 육체적 사랑을 나누던 로트렉은 사랑에 빠지는데, 마리는 그의 장애와 성적인 미숙함을 이유로 큰 상처를 주고 떠났다.

이후 로트렉은 여인들에게서 더 이상 사랑을 기대하지 않고 돈을 내고 산 육체적 쾌락만을 찾게 된다.

그렇게 쾌락적인 삶을 추구하며 살던 로트렉에게 한 여인이 나타난다. 지금도 몽마르트의 인기 명소 중 하나인 카페 라 메종 로즈의 마담이자 화가들의 모델이었던 수잔 발라동이었다.

가난한 어머니의 사생아로 태어난 발라동은 몽마르트에 입성한 뒤 많은 화가들과 교류하며 모델로 활동하면서 그들의 연인이 되기도 했다. 그녀에게는 아버지가 알려지지 않은 아들이 있었는데, 르누아르가 친부라는 설도 있었다. 르누아르의 대표작 <부지발의 무도회>에 등장하는 여자가 바로 발라동이다.

르누아르, 샤반 등과 사귀던 발라동은 어느 날 로트렉의 모델이 되었다. 발라동은 모델 활동을 하면서 그림 실력을 키웠는데,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로트렉은 그녀의 그림에 관심을 가져줬고, 화가의 꿈을 이어나가도록 격려해줬다.

툴루즈 로트렉, 세탁부(1889, 개인소장)
툴루즈 로트렉, 세탁부(1889, 개인소장)

또 모델로서 발라동을 표현할 때도 로트렉은 그녀의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내면의 고뇌와 슬픔, 삶에 지친 모습까지 담아냈다. 발라동은 로트렉이 자신을 모델로 그린 그림들 중에서 <세탁부>를 가장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이 작품의 모델이 카르멘 고댕이라는 설도 있다)

이 작품은 훗날 로트렉의 대표작으로 알려졌고, 2005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비싼 가격인 2240만달러에 팔렸다.

그렇게 로트렉과 발라동은 교감을 나누며 진실한 관계를 이어갔다. 로트렉은 친구인 드가에게 발라동을 소개했고, 그에게서 정식으로 그림을 배울 수 있게 됐다. 발라동은 훗날 드가의 도움으로 화단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진정한 소울메이트였고,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했다. 발라동은 로트렉에게 청혼했지만, 그는 나는 좋은 남편감이 아니다라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로트렉의 마음을 바꾸지 못한 발라동은 결국 그를 떠났다.

르누아르 작품 속 사랑스러운 여인, 드가의 <욕조>에서 보여지는 관능적인 모습의 발라동은 로트렉의 시선을 통해 흐트러진 머리에 낡은 옷을 입은 하루의 삶을 걱정하는 평범한 여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수잔 발라동을 모델로 한 그림-(좌))르누아르 ‘부지발의 무도회’(1883, 보스톤 미술관), (우)드가 ‘욕조’(1886, 오르세 미술관)
수잔 발라동을 모델로 한 그림-(좌))르누아르 ‘부지발의 무도회’(1883, 보스톤 미술관), (우)드가 ‘욕조’(1886, 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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