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성차별 근절을 위한 1년간의 교육실험
【영국】 성차별 근절을 위한 1년간의 교육실험
  • 서정환 기자
  • 승인 2019.11.22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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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교육 프로그램 실시한 초등학교 5개에서 13개로 늘어나

출처 : 픽사베이
출처 : 픽사베이

 

○ “여성들도 축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2월 국가인권회가 공개한 ‘2018 초·중등교과서 모니터링 결과발표’를 보면 현재 초·중학교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교과서에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자녀 양육·집안일을 하는 사람은 주로 여성이고, 일하고 퇴근하는 인물은 대부분 남성이다. 또한 여성은 대부분 치마를 입는다거나 기업 대표 등은 대부분 남성으로 등장하는 등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오히려 강화하는 내용이 다수이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해 처음으로 교과서의 성차별적인 요소를 개선할 것을 공식 권고한 바 있다.

영국에서는 한 비영리단체의‘성평등’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초등학교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에게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영국 가디언지는 <리프팅 리밋(Lifting Limits)>이라는 단체가 개발하고, 주관하는 성평등 교육을 통한 1년간의 교육실험에 대해 소개했다.

이 실험의 보고서에 따르면 토리아노 초등학교를 비롯한 캄덴(Camden)과 북부 런던의 다섯 개 초등학교 어린이들은 성불평등에 대해 자신있게 의견을 표현하게 됐고, 성에 대한 정형화된 태도도 확실히 줄었다. 

토리아노 초등학교의 로즈마리 오브라이언(Rosemary O’Brien) 교사가 10살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수업시간. 

오브라이언 교사가 “축구는 여성에게는 전적으로 안 맞는 운동”이라는 1921년 축구협회의 발언을 칠판에 쓰자마자 교실 전체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한 소년은 “그것은 완전히 거짓말이에요”라고 말했고, “여성들도 (축구를) 할 수 있어야 해요. 남자들처럼 축구클럽도 갖고 유명해질 수도 있으며,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어야 해요”라고 말하는 소녀도 있었다. 

 

○ 학생과 교사의 성역할 인식을 바꾼 1년간의 실험

이런 현상은 학생들 뿐 아니라 선생님들에게도 나타났다. 

잭 홈즈(Jack Holmes) 선생님은 전에는 남아보다는 여아에게 부드러운 톤으로 말하곤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을 비롯한 남자 교사들은 과거 여자 교사들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인식하게 되었고, “자신의 (성에 대한) 정형화된 태도에 의문을 제기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1년간의 실험을 통해 학생들과 교사들은 남성과 여성, 그리고 성역할에 대한 인식이 현저하게 달라졌다.

이런 변화는 어떻게 일어났는가? 

<리프팅 리밋>의 프로그램을 통해 교사들은 자신들의 작은 행동까지 ‘성평등’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첫 번째 검사에서는 걱정할 만한 신호들이 많이 발견됐다. 어떤 교사들은 무의식적으로 성차별적인 말들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안녕, 친구들(hi, guys)(*guy는 사전적으로 남자애를 의미)”, “너, 오늘 멋있어 보이는데, 엄마가 옷 입혀줬니?”, 혹은 “선생님이 이 무거운 것 옮기는 것을 도와줄 건장한 남성은 누구?” 등이다.
 
아이들도 “여자애같이 던지네!” 등과 같은 성차별적 발언을 하고 있음이 나타났고, 공룡에 관한 이야기도 주로 수놈 공룡에 관한 내용이었다. 

유명한 남성 위인들을 기리는 전시회도 있었고, 발명가나 예술가, 탐험가들에 대한 수업도 그 대상은 주로 남성이었다. 읽기 교과서는 성차별적인 구식의 정형화된 표현들로 가득했다. 어떤 도서관에서는 전쟁에 관한 책표지에 ‘남아용’이라고 붙여놓기도 했다.

프로그램 시행 초기에는 과학 관련 직업을 원하는 학생들의 2/3가 남아였고, 수의사나 교사 등 보살피는 역할을 하는 직업을 원하는 학생들의 75%가 여아였다. 

 

○ 교사가 되겠다는 남학생, 축구선수 되겠다는 여학생 늘어나

반면,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에는 과학 관련 직업을 원하는 남학생 수가 여학생 수와 같았고, 경찰관과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한 여아들의 수가 남아들보다 훨씬 많았으며, 교사가 될 수도 있다고 응답한 남아의 비율은 24%에서 42%로 증가했다. 

저학년 학생들의 경우 간호사, 청소원, 건설업자, 의사가 “모두가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답한 비율이 (고학년의) 거의 2배였다. 또한 1학년과 2학년 학생들 중 인형이 “모든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답한 비율이 (고학년의) 거의 2배였다. 

여성으로서 어려운 점을 묻는 질문에 대해 성차별적 측면이라고 대답한 비율은 8%에서 21%로 증가했다. 

프로그램에서는 각 학교별로 한 명의 교사가 프로그램 감독관으로 지정된다. 학급회의나 학부모회의를 위한 토론자료 뿐 아니라 수업계획도 제공된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수학시간에 여성 국회의원 수를 비교한다거나, 지리시간에 누가, 그리고 어떤 이유로 탐험가가 될 수 있는지 등을 토론한다.

오브라이언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하면서 “이제 강의계획표를 보면, 어떤 여성들을 예로 거론할까를 생각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성차별적 정형화를 뒤짚는 책들을 구입하고, 동화에 나오는 전통적인 정형화된 성역할은 토론의 대상이 된다.

토리아노 초등학교의 헬렌 브룩도르퍼(Helen Bruckdorfer) 교장은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게 됐다면서 “이제 성별을 모르는 상태에서 (교사를) 채용하는 방식을 시행할까 한다..그리고 (성적으로) 융통성 있게 일하는 선생님들을 지원하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올해 들어 13개 학교에 추가로 시행되고 있다. 

<리프팅 리밋>의 창설자인 카렌 게스트너(Caren Gestetner)는 영국의 모든 학교에 이 프로그램이 시행되기를 바라는데, “문제는 재원이다. 우리는 복권위원회로부터 약간의 재정지원을 받아왔는데, (이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시행하려면) 더 많은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웨딩TV】 서정환 글로벌 전문기자 jhseo1222@wedd.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