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남성, 여성, 아니면 중성? 스페인 헌법용어의 성편향성 논쟁
【스페인】 남성, 여성, 아니면 중성? 스페인 헌법용어의 성편향성 논쟁
  • 서정환 기자
  • 승인 2020.02.04 2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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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남성 편향적 용어를 남성과 여성 병용으로 바꾸자”

출처 : 픽사베이
출처 : 픽사베이

 

○ “남성언어 사용하는 헌법은 현대 민주주의에 맞지 않다”

‘The President, at the time of his inauguration, shall take the following oath..’(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69조의 첫 부분을 영어로 번역한 내용이다. ‘his inauguration’이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대통령을 남성으로 한정했다.

1987년 공포된 6공화국 헌법의 공식 영문본을 보면 남성형 명사나 대명사만 있을 뿐, 여성을 지칭하는 대명사는 전혀 없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 헌법 영문본을 성중립적으로 다시 작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헌법용어의 남성 편향성 논란은 우리나라만의 이슈가 아니다. 

영국 가디언지는 스페인에서 성중립적 언어로 헌법을 다시 쓰는 문제를 놓고 보수적인 학술원과 이번에 새로 성립된 사회주의 정부 간의 최후의 결전이 다가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카르멘 칼보(Carmen Calvo) 부총리 겸 양성평등부 장관은 남성명사를 보다 포괄적인(inclusive) 형태의 단어로 바꾸어 1978년 헌법을 새로 쓰자는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스페인어의 올바른 사용법에 대해 최종결정권이 있는 왕립스페인학술원(Royal Spanish Academy)은 그 결정을 늦추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12개월간의 정치적 변동으로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좌파연합 정부가 들어서자 이 문제가 다시 등장했다.

최근 급진 좌파 정당인 우니다스 포데모스(Unidas Podemos)의 욜란다 디아즈(Yolanda Díaz)와 이레네 몬테로(Irene Montero)가 ‘내각’을 기존의 ‘consejo de ministros’(*장관을 뜻하는 남성명사) 대신에 ‘consejo de ministras’(*장관을 뜻하는 여성명사) 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학술원은 “문법적으로 포용될 수 없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consejo de ministras’ 는 모든 장관이 여성인 경우에만 사용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칼보 부총리는 이를 반박하면서 “헌법 용어가 양성 모두를 반영할 때가 되었다. 현행 헌법은 남성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현대 민주주의에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 보수적인 스페인 학술원 “언어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반박

성 구별이 있는 많은 언어에서 그렇듯이, 스페인어에서도 대상이 남성인지 여성인지가 명시되지 않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남성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여자아이는 niña이고 남자아이는 niño인데, 어린이는 niños 이다. 

포괄적 언어 사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남성과 여성을 ‘병용’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the neighbourhood children”을 “the neighbourhood boys and girls”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관습주의자들은 격렬하게 반대할 수 있다. 

포괄적 언어로 헌법을 재작성 하려면 약 500개의 단어를 바꿔야 하고, 상당수의 병용표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예를 들어 ‘Spanish citizens’은 ciudadanos/ciudadanas (시민)  españoles/españolas(스페인의) 이 된다.

보수적인 학술원은 이런 문제를 회피하면서 남성 명사가 성중립적이라고 주장하는데, 한 공식문서에는 “(남성과 여성)병용은 언어학적 측면에서 인위적이며 불필요한 것이다. 생물을 가리키는 명사의 경우, 성에 관계없이 남성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 명시적으로 여성을 사용하는 것은 양성의 상반성이 관련있는 경우만 정당화된다”라고 명시돼있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학술원은 정부의 요구가 언어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라고 주장한다고 한다. 학술원의 한 회원은 “우리는 우리가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포괄적인 언어라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스페인 헌법에 있어서의 이런 언어적 문제는 영국 여성 운동가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스페인 여성 운동가들은 남성 용어를 병용으로 대체하기를 원하는 한편, 성을 명시하기를 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juez/jueza(판사)나 alcalde/alcaldesa(시장)처럼. 

반면, 영국의 여성 운동가들은 mayoress(여성시장), conductress(여성승무원)와 같이 성을 구분하는 표현은 불필요하다고 반대하고 있다. 

 

【서울-웨딩TV】 서정환 글로벌 전문기자 jhseo1222@wedd.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