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01 임산부 편  “저는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대한민국 임산부입니다” (1)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01 임산부 편  “저는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대한민국 임산부입니다” (1)
  • 민소희 기자
  • 승인 2020.03.24 19: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리즈를 시작하며>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20년 대한민국 인구는 5178만여명으로 추정된다.

피곤한 퇴근길에 산 복권 한 장으로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내는 직장인, ‘청춘’이라는 빛나는 이름과 맞바꾼 취업준비생, 현업에서 밀려나 불안한 현실과 맞닥뜨린 베이비부머들, ‘억!’ 소리 나는 결혼비용과 곡소리 나는 교육비용을 감당하며 아이를 키우는 ‘용감한’ 엄마, 아빠들, 말로는 ‘출산친화’, 속으로는 ‘임신이 벼슬이냐?’라는 인식에 몸보다 마음이 더 무거운 임산부, 다문화 감수성이 부족한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는 다문화 가족들.. 이 시간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웨딩TV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시리즈를 통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내며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임산부를 불편해하는 시선들

A (30세) 씨는 오늘도 만삭의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오른다. 출산 예정일을 1달여 앞두고, 1주일마다 정기검진을 다닌다. 병원까지는 6개역, 20분도 안되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안전을 위해서 임산부석으로 향한다.

하지만 A씨는 오늘도 임산부석에 앉지 못했다.  임산부석에 앉아있던 한 중년 남성은 A씨를 보자마자 이내 눈을 감아버린다. 비켜주지 않으려는 의도임을 잘 아는 A씨는 결국 출입문 쪽에 섰다. 좌석 앞에 서있으면 앉아있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A 씨가 내릴 역에 다다르자 그 중년 남성도 헛기침을 하며 일어난다. 그리고는 A씨를 힐끗 보고 지나친다. A씨는 그 뒷모습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빨리 애를 낳아야 저 꼴을 안보지..”라고 생각하면서.

 

'임산배 배려석'의 불편함을 토로하는 임산부의 글 - 출처 : 'ㄷ' 맘카페
'임산배 배려석'의 불편함을 토로하는 임산부의 글 - 출처 : 'ㄷ'카페
'임산배 배려석'의 불편함을 토로하는 임산부의 글 - 출처 : 'ㅁ' 카페

 

이런 일은 비단 A씨만 겪는 게 아니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임산부 배려석’을 검색해 보았다.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는 임산부들의 수많은 글들이 검색된다. 개그우먼 안소미씨는 KBS의 <인간극장>에 출연해 “임신했을 때 종종 임산부 배지를 달고 지하철을 타고 다녔지만 양보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임산부 배려석에서 벌어지는 일들

지난 2월 2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출생 ·사망통계(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92명이었다. 해마다 심각성을 더하는 저출산 문제에 정부도 출산 장려 방안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임산부 배려석’이다. 

임산부 배려석은 임산부를 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확산하고자 지난 2013년 서울시의 여성정책 일환으로 시작됐지만, 당초 취지와는 달리 모두에게 불편한 정책으로 인식되고 있다. 당사자인 임산부들은 주위 시선 때문에 아예 앉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용기를 내 자리를 양보 받으려고 해도 '유난 떤다'며 눈총을 받거나, '배 좀 만져 보자'며 성희롱까지 받았던 경우도 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 400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대중교통 임산부석 이용에 불편을 느낀 적이 있다” 라고 답변한 비율이 약 89%로 나타났다. 10명 중 9명은 임산부 배려석에 불편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로는 ‘자리를 비켜주지 않고 모른 척해서’ 라는 답변이 절반 이상이 나타났고 그 다음이 ‘임산부석이 부족해서’ 답변이 16%였다. 부족한 것은 임산부석이 아니었다. 정부의 정책 못지 않게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사회적으로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 반성을 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2월 13일, 임산부에게 욕설과 폭행을 한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의 가벼운 형량이 선고되며 논란이 일었다. 해당 남성은 지난해 5월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던 임산부에게 “야 이 XXX이, 요즘 XXX들은 다 죽여버려야 된다. 여기 앉지 말라고 쓰여 있잖아”라는 폭언과 함께 왼쪽 발목을 수차례 걷어찼다. 

이 사건은 앞서 같은 해 5월 21일 청와대 국민 청원에 글이 올라가면서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고, SNS와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간 바 있다.

 

임산부 배려문화 정착이 시급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임산부 배려석 민원 건수는 총 2만7589건이었다. 하루 평균 75건의 민원이 들어온 셈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개선의 필요성을 느낀 김광수 서울시의원은 임산부 배려석 이용 개선방안을 담은 ‘서울특별시 대중교통 기본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조례안은 지난 6일 지원조례를 통과했다. 해당 조례안은 지하철 보안관이 전동차 순찰시 임산부 외 승객에서 핑크석(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둘 수 있도록 권고하는 규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임산부 배려석
임산부 배려석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임산부를 배려하는 사회적 문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018년 12월 ‘임신 경험으로 본 배려문화와 지원정책’ 토론회에서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센터장은 “배려는 실천이 동반되어야 배려”라며, “지속적 캠페인과 교육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와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산부들에게 필요한 것은 임산부석이 아니라 임산부 배려문화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9월 26일부터 10월 5일까지 임산부 3천2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산부들은 가정에서의 청소, 빨래 등 가사 지원(46.8%), 직장 출퇴근 시간 조정(31.1%), 대중교통 좌석 양보(37.8%) 등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서울-웨딩TV】 민소희 지역 및 기업 담당기자 paula.y@wedd.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