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는 보통 5천원, 많으면 2만원! 지금은 5만원도 적은 액수

S#1  1970-80년대

흔히 장례식이나 결혼식에 참석해서 내는 돈을 통틀어서 ‘부조금’이라고 한다.

 

‘부조’는 상부상조의 줄임말로 

서로 의지하고 돕는다는 뜻.

 

그래서 부조금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돈의 형태가 아니었다.

 

이웃에서 큰 행사가 있는 경우

곡식이나 술 등의 필요한 물품을 주기도 하고.

그럴 형편이 안되면 노동력, 쉽게 말해 몸으로 때우기도 했다.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성의표시를 했으니,

부조를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큰 부담이 없었다.

 

지금과 같은 현금 부조는 언제 등장했을까?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의 경험상 1970-80년대로 추정된다.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부조록에 물품명 대신 현금 액수가 적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예식장 입구에 축의금 접수대가 등장했다고.

 

그 시절에는 

축의금 액수가 얼마나 되었을까?

 

1980년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60대 초반의 한 기업 임원의 기억을 빌려보자.

 

   “그 당시는 몇 년 사이에

   나를 포함해서 동기들이 우루루 결혼을 했는데,

   친한 친구는 2만원 정도, 그냥 안면만 있는 정도면

   5천원-1만원 정도 부조를 했던 것 같아.”

 

참고로 지금 5천원 정도인 짜장면 값이 1980년대는 500원 정도.

 

S#2 2020년 현재

받으면 일단은 부담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청첩장일 것이다.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그만큼 축의금 부담이 커진 까닭이다.

 

 

사실 축의금 상승률은 물가보다 더 높다.

 

국가통계포털에서 보면,

우리 생활과 밀접한 생활물가지수의 경우

2007년에 82.235에서 2017년 기준 100.97로

10년 사이에 23% 상승했다.

 

2000년 이전만 해도 웬만한 경우 1-2만원이면 충분했던 축의금 액수가

2000년 초반에 이르자 최소 3만원은 내야 체면이 섰고,

최근에는 5만원 내기가 어색한 분위기가 ㅠㅠ

 

즉, 기본 축의금이 3만원에서 5만원으로 67% 상승했다.

 

축의금이 물가보다 2배 이상 오른 것이다.

 

이렇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축의금..

 

그래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취준생 등 젊은이들이

축의금 알바까지 한다는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준 만큼 받아야 하고, 적게 내면 눈치 보이고,

이런 계산속의 축의금 문화는 언제 없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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