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경색 딸 15년 돌보다 살해한 70대 엄마에게 집행유예 선고한 재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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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인천에서 A(70)가 딸 B(48)에게 수면제를 먹인 후 목 졸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2004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B씨의 대소변을 받는 등 15년간 돌봤다. A씨는 오랜 간병으로 인해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범행 전 가족들에게 딸을 죽이고 나도 죽어야겠다며 고통을 토로한 것으로 확인됐다.

1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데 이어 지난 102심 재판부 역시 원심을 그대로 유지하고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장기간 간병하는 모든 사람들이 피고인과 같은 범행을 저지르진 않는다는 점과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으며 15년간 피해자를 간병하는 것 외에 피고인에게 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점 등 대립하는 사정으로 결혼을 내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간병 살인이라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간병 가족의 어려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따뜻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오랜 간병 생활에 지쳐 부모, 배우자, 자식을 살해하거나 동반 자살하는 간병 살인이 늘고 있다.

지난 2014년 유명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의 아버지가 치매를 앓던 부모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15년 간 부모를 간병하다가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린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이 사건은 고통 받는 간병 가족들의 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2018년 기준 국내에서 암, 심장병, 뇌 질환, 희귀난치성 질환 등 4대 중증질환을 앓는 환자는 160만 명에 달하고 있으며,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19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치매 환자는 약 75만 명으로 10명 중 1명 꼴로 치매를 앓고 있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2039년에는 치매 환자가 200만 명, 2050년엔 300만 명으로 늘어난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가족이 치매나 장애, 중증질환을 앓게 되면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하고, 대부분의 경우 나머지 가족들이 이를 감당해야 한다. 장기간의 돌봄, 호전될 가능성이 적은 암울한 상황은 간병인들을 절망으로 몰고 간다.

A씨 항소심을 맡았던 재판부의 언급대로 장기간 간병하는 모든 사람들이 피고인과 같은 범행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보통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2018년 서울신문이 한국치매협회, 포털사이트 네이버 카페 '뇌질환환우모임' 등과 함께 가족 간병 중인 292명을 대상으로 우울증 자가 진단을 한 결과, 10명 중 6명은 우울증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보통의 경우보다 10배 이상 높은 비율이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가 시작된 일본에서는 간병살인이 이미 사회문제로 대두했다. 마이니치 신문은 2018년 재택 간병과 간병 살인을 다룬 <벼랑 끝에 몰린 가족의 고백>을 출간했다. 이 중 가족을 간병하는 7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55%살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는 대목에서 간병인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가족 간병은 단지 개인의 비극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환자 뿐 아니라 간병인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지원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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