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잊게 하는 스릴러 속 여주인공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는 소서(小暑)도 지나고, 초복을 앞두고 있다. 요 며칠 계속 비가 내려 더위는 잠시 가셨지만, 슬슬 더위 사냥 차비를 해야 할 때다.

올 여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휴가를 떠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집을 떠나 불안에 떨 바에야 마음 편하고 안전한 북캉스야말로 언택트 시대의 휴가로 최고가 아닐까.

평범한 인생을 살고 싶은데도 운명의 장난인지 유별날 수밖에 없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범죄 스릴러 두 편이 독자들을 찾아왔다. <마스 룸><제인 스틸>이다.

쇠사슬의 밤은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에 거행된다.

<마스 룸>의 첫 문장은 음산하다. 주인공에게 순탄한 인생이 허락되지 않으리라는 감()이 팍팍 온다.

이십대 싱글맘 로미는 스트립클럽 마스 룸(THE MARS ROOM)에서 댄서로 일하며, 홀로 어린 아들을 키우고 있다. 그러다가 몇 달 동안 자신을 스토킹해온 오십대 커트 케네디의 머리를 공구로 내려쳐 사망에 이르게 한 죄로 두 번의 종신형에 추가 육 년 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당신은 나를 기다리던 커트 케네디를 발견한 그 밤에 내 운명이 결정됐다고 판단할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 내 운명을 결정지은 건 재판과 판사와 검사와 국선변호인이다.

남자는 로미를 미행하고 지켜보며 그녀의 쓰레기를 뒤져 알아낸 번호로 30통씩 전화를 걸고, 아무데나 불쑥 나타나 그녀를 괴롭혔지만, 법정에선 그 무엇도 다뤄지지 않았다. 열 두명의 배심원들에게 알려진 사실은 미혼모이자 스트리퍼인 젊은 여자가 베트남전 참전용사, 강직한 시민인 남자를 죽였다는 것이었다.

이는 스토킹·강간·여성혐오 범죄에 대해 관대한 사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흡사하다.

남자들이 자신을 훔쳐보지 않기를, 그리고 아이를 기르며 조용하게 살고 싶었던 로미의 바람은 허무하게 좌절되고, 그녀는 또 다른 마스 룸, 또 다른 사회인 스탠빌 여자 교도소에 다다르게 된다.

소설은 교도소로 향하는 호송차량 내부를 그리며 시작돼 교도소와 로미의 어린 시절, 마스 룸에서의 생활 등이 번갈아 서술된다.

로미는 샌프란시스코 선셋 지구에서 비행 청소년들과 어울려 십대 시절을 보냈고, 성인이 되어서는 클럽 바텐더로 일하며 모토구찌 바이크를 몰았던 작가 레이철 쿠시너의 기억과 경험을 덧입혀 완성된 인물이다.

소설 <마스 룸>은 국가의 교정(矯正) 시스템에 대한 쿠시너의 개인적 관심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작가는 범죄와 처벌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고자 범죄학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함께 교도소와 법원을 다녔고, 그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을 통해 다양한 인간상의 죄목과 그 죄지은 자들이 밟는 길을 낱낱이 보여주며 계급·인종·가난·착취·기회·운명에 관한 질문들을 쏟아낸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받았고 맨부커상과 미국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레이첼 쿠시너 저. 문학동네. 16,000원.

 

스릴러의 신성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린지 페이의 <제인 스틸>은 제목에서 추측할 수 있듯 영국 작가 샬롯 브론테의 1847년 작품 <제인 에어>를 고딕풍으로 개작한 소설이다.

제인 에어는 집안도, 외모도 별 볼일 없는 고아지만, 기죽기는커녕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운명을 개척하는 당당한 여성상으로 그려져 출간되자마자 19세기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제인 스틸>은 원작을 훼손했다는 비난과 함께 오마주(Hommage, 존경심)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기도 했다.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제인 스틸은 하나 뿐인 어머니를 잃고 고아로 살아가다가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가정교사가 된다. 이런 설정은 자연스럽게 <제인 에어>를 떠올리게 한다.

제인 스틸은 무자비하고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큰 위험에 처하게 되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적극적이고 치명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세상에 죽일 놈 참 많아..제 욕정을 채우겠다고 열 살도 안된 사촌동생을 강간하려는 소년이 있는가 하면, 비열한 수법으로 제자를 겁박하려는 기숙학교 교장 놈도 있어. 대저택의 순진무구 도련님, 존경받는 교육자라는 가면 쓴 그 놈들을 죽였어. 나도 모르게...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인을 거듭할수록 그녀는 정의와 부조리, 분노와 침묵의 간극을 느끼며 점점 삶이 황폐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한 삶의 균열이 짙어지는 순간, 젊고 아름다운 그녀에게 찾아든 것은 사랑이었다.

성인이 된 제인은 어릴 적 엄마와 살았던 저택 하이게이트 하우스를 되찾을 결심을 하고 가정교사로 그곳에 들어가게 된다. 제인은 저택의 주인인 찰스 손필드와 인도인 하인들이 만들어내는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비밀에 쌓인 손필드의 정체를 파헤쳐 간다. 하지만 그를 향한 연모의 감정이 점점 커져간다.

<제인 에어>를 차용한 작가는 그저 단순한 패러디나 흥미 위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고전에 대한 그의 대담한 해석과 발랄한 상상력은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 죄책감 및 진실에 대한 탐구는 물론, 궁극적인 자아실현까지 이야기의 범위를 확대해 간다. 린지 페이 저. 문학수첩. 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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