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16일로 시행 1년을 맞는다.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한 개정 근로기준법은 지난해 7월 16일부터 시행됐다.
2013년 9월 당시 민주통합당 한정애 의원이 법안을 발의한 지 6년 만에 법이 시행되면서 직장의 갑질문화가 근절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전까지 근로자들은 폭력, 부당노동행위, 성희롱 등에 대해서는 형법, 노동조합법, 남녀고용평등법으로 대응할 수 있었지만, 직장 내괴롭힘에는 관련법이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법 시행 후 직장내 괴롭힘은 얼마나 줄었을까?
14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전국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응답자가 45.4%에 달했다.
괴롭힘 유형은 모욕·명예훼손이 29.6%로 가장 많았고, 부당지시'(26.6%), '업무 외 강요'(26.2%)가 뒤를 이었다.
괴롭힘을 당했을 때 대응 방식(중복 응답)으로는 ‘참거나 모르는 척 했다’는 응답이 62.9%로 가장 많았고,‘개인적으로 항의했다’(49.6%), ‘친구와 상의했다’(48.2%), ‘회사를 그만두었다’(32.9%)는 응답도 많았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에 따라 직장내 괴롭힘이 발생한 경우 노동자는 회사에 신고할 수 있고, 사용자는 그 사실 여부를 조사하고,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사업장 내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 노동청에 신고할 수 있다.
이런 법조항이 무색하게 직장내 괴롭힘을 당한 경우 ‘회사나 노동청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3.0%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신고자의 절반은 괴롭힘을 인정받지 못했고, 43%는 신고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처우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괴롭힘의 판단기준이 복잡하고, 피해자에게 입증책임이 있기 때문에 이런 요건을 갖춰 신고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또한 가해자 처벌조항이 없다는 것도 피해자들이 신고를 포기하는 이유다.
이렇듯 실효성 없는 있으나마나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놓고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지난 9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면서도 정작 괴롭힘 행위자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어 해당 조항이 선언적 의미로 전락할 수 있다”며 “행위자 처벌 규정을 신설하고 사용자의 조치 의무 위반에 대해서도 적절한 제재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사업장 내부 사용자·노동자에 의한 괴롭힘으로 한정된다. 그래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입주민의 폭행·폭언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아파트 경비원, 기업 오너 및 일가의 폭언·협박에 시달린 운전기사 등은 직장 내 괴롭힘이 적용되지 않는다.
인권위는 이를 두고“직장 내 괴롭힘은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인권침해임에도 규정 미비로 보호 사각지대가 생기고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괴롭힘 행위자 범위를 ‘누구든지’로 확대하고, 4명 이하의 사업장에도 적용을 확대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을 최초 발의했던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4일 직장내 괴롭힘 가해자에 대한 제재조치를 담은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직장내 괴롭힘 가해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칙을 적용하는 조항이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