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창백하고 거친 피부, 뻣뻣하게 굳어버린 몸이, 내가 죽었음을 말해 줬다.”
[이 책]“창백하고 거친 피부, 뻣뻣하게 굳어버린 몸이, 내가 죽었음을 말해 줬다.”
  • 추영 기자
  • 승인 2020.10.1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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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育兒)하다가 육아(戮我)로 좀비 된 엄마들...만화 <좀비 마더>

박소림의 <좀비 마더> 일부(출처-알라딘)

욕실에서 거울을 보던 한 여성의 독백이 비장하게 울려퍼진다. “창백하고 거친 피부, 뻣뻣하게 굳어버린 몸이, 내가 죽었음을 말해 줬다.”

아기가 쏟은 분유를 치우고, 젖병을 물고 있는 아기를 보며 잠시 숨을 돌리는 것도 잠깐, 어느새 아기는 가스렌지 위에서 끓고 있는 냄비로 손을 뻗친다. 배가 고파 새벽에 깨어 칭얼거리는 아기를 업고 엄마는 잠에 취한 채 분유를 탄다.

만화가 박소림의 신작 <좀비 마더>의 일부분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육아맘의 일상 그대로다.

18개월 해진이의 엄마는 아이를 키우며 자신을 죽이고 살다가 결국 좀비가 됐다. 거무죽죽해진 피부를 감추려고 몇 년 만에 화장을 하던 주인공에게 남편은 살이나 빼라고 핀잔을 주지만, 심장이 멈춰서인지 화도 나지 않는다.

박소림 작가는 첫 아이를 낳고 육아에 정신없던 시절, 산후우울증으로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린 엄마들의 사건을 접하고 이 만화를 그리게 됐다고 한다. 자신을 비롯한 이 세상 엄마들을 껴안아 주고, 힘내라고 응원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담긴 작품이다.

<좀비 마더>는 육아맘의 고충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첵 속에서 육아로 지친 사람들은 모두 좀비가 된다. 외벌이로 힘겹게 가정을 꾸려 나가는 해진 아빠, 맞벌이하는 아들 부부와 함께 살며 손주를 돌보는 옆집 욕쟁이 할머니도 좀비다.

이들의 공통점은 가족 안에서 고립되거나 육아 우울증을 겪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며 열심히 살아왔지만, 남은 건 키워야 할 아이, 갚아야 할 빚뿐인 현실을 좀비캐릭터로 적나라하게 꼬집고 있다.

좀비 엄마들은 서로를 위로하지만, 근본적인 해답은 없다. 육아고충을 해결해주지도, 이해해주지도 못하는 현실 자체가 바로 좀비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박소림 작. 보리출판사. 15,000.

 

 

【서울-웨딩TV】 추영 기자 (편집인/국장) crystalware0615@wedd.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