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엄마 이름 새겨진 태아 유해 무덤들 발견돼
[이탈리아]엄마 이름 새겨진 태아 유해 무덤들 발견돼
  • 서정환 기자
  • 승인 2020.10.2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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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반대 단체, 가톨릭 교단, 극우단체가 배후인 듯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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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는 엄마의 이름이 적힌 십자가 밑에 태아 유해들이 묻혀있는 묘지가 발견돼 100여명의 여성들이 검찰에 그 배후에 대한 수사를 요청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런 사실은 지난 10월초 지역 신문에서 천사들의 들판(fields of angels)’에 대한 기사를 읽은 한 여성이 호기심에서 알아본 결과 드러나게 됐다.

당시 로마의 프리마 포르타(Prima Porta) 묘지에는 이 여성을 포함한 엄마들의 이름과 태아 유해가 묻힌 날짜가 새겨진 나무 십자가들이 늘어서 있는 장소가 있었다. 이 여성은 이런 사실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후 100여명의 관련 여성들이 집단소송을 위해 모였고, 이 사건은 1978년 이후 낙태가 합법화됐음에도 이탈리아 여성들이 안전한 낙태를 하는 데 있어서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사건을 고발한 여성운동단체 디페렌짜 돈나(Differenza Donna)’는 여성의 인권과 사생활이 심각하게 손상됐다고 주장했다.

프란세스카(36)2019년 임신 6개월 당시 태아가 기형이라 임신기간을 채울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임신중절을 했다. 그런데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 유해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십자가와 함께 묻혀있는 것을 보고 거의 기절할 뻔 했다고 말했다.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프란세스카도 (태아유해의) 매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는 3개월 이후 임신중절을 한 태아 유해는 매장할 수 있지만, 엄마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녀는 딸아이를 잃은 엄청난 고통 후에 이런 짐승 같은 행위를 목격하다니...”라고 말했다. 무덤에는 임신중절 3개월 후인 201912월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프란세스카는 병원에 태아유해를 어떻게 했느냐고 몇 번이나 물어 보았는데, 버렸다고 했다. 그럼 태아유해는 3개월 동안 어디 있었는가? 십자가와 함께 묻혀있으니 마치 벌 받는 느낌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지역보건 당국은 이에 대해 아직 언급이 없고, 이 사건을 처음 알린 여성이 임신중절을 한 로마의 생 까밀로(San Camillo)’ 병원은 책임을 부인했다. 로마의 묘지를 관리하는 공공회사 역시 보건당국의 지도하에 매장을 한다면서 책임을 부인했다.

리비아 투르코(Livia Turco) 전 보건부장관은 이번 사건의 배후에는 낙태반대 단체가 있다고 확신했다.

낙태유해 묘지(출처-더 가디언)
낙태유해 묘지(출처-더 가디언)

매장은 50여 년 전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 하에서 만들어진 법을 1990년에 개정해 가능해졌다. 낙태반대 단체와 가톨릭 교단, 그리고 극우단체들은 몇 년 동안 천사들의 들판을 만들 것을 촉구해왔고, 지역 정치인이나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이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투르코 전 장관과 여성운동가,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들은 태아유해에 엄마 이름을 붙여놓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투르코 전 장관은 사생활 문제가 심각하고, 누구의 책임인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면서 이런 일은 우리가 과소평가했던 가톨릭 단체가 동원된 결과이다. 로마 뿐 아니라 이탈리아 전역이 해당된다. 이들은 여러 기관과 공모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여성 운동가들은 로마 시청과 로베르토 스페란자(Roberto Speranza) 보건부 장관이 이 사건에 조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디페렌짜 돈나의 엘리자 에콜리(Elisa Ercoli) 대표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하루에 수십 건의 전화를 받고 있다면서 “2012~2020년 기간이 새겨진 십자가들을 발견했는데, 2005년이 라고 새겨진 십자가를 보았다는 여성들도 있다. 체계적인 절차가 있음에 틀림없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누가 누구를 위해 이런 결정을 하는 것일까?”라고 반문했다.

이탈리아에는 도덕적 이유로 임신중절을 거부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많아 여성들이 안전한 임신중절 수술을 받기가 어렵다. 이탈리아 의사 10명 중 7명은 도덕적 반대자이다.

은퇴 전 로마에서 임신 중절수술을 시행했던 몇 안되는 산부인과 의사 중 한명인 실바나 아가톤(Silvana Agatone)은 태아 유해들의 묘지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프리마 포르타 묘지일 줄은 몰랐다면서 이런 묘지는 1937년부터 있었다. 우익 단체들이천사들의 들판이라는 이름으로 이와 같은 묘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임신중절을 시행하는 의사의 부족으로 인해 로마에서 임신중절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은 5개뿐이고, 로마보다 면적이 넓은 라찌오(Lazio) 지역에는 단 1개도 없다.

프란세스카는 이탈리아에서는 낙태가 합법적인데도 문명화된 방법으로 임신중절을 받을 수가 없다.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서울-웨딩TV】 서정환 글로벌 전문기자 jhseo1222@wedd.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