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나는 피임약의 인질이었다!”

전세계 1억명 이상의 여성이 사용하는 약, 여성들의 삶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준 약, 바로 피임약이다.

최초의 피임약 ‘에노비드’가 미국식품의약국(FDA)의 공식 승인을 얻은 것이 1960년이었고, 영국의 경우 1961년 12월 4일, 이넉 파웰(Enoch Powell) 당시 보건장관은 여성에게 성적⦁사회적⦁의료적 해방의 시대를 열어 주었다.

경구피임약이 도입된 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피임약의 효과, 사용법, 부작용 등은 잘 알려져 있는 반면, 피임약 복용중단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소피 갤라거(Sophie Gallagher)는 12년 넘게 피임약을 복용했는데, 지난 몇 년간 피임약 복용을 중단하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복용 중단 후의 나타날 결과와 인공 호르몬 사이클의 파괴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정보가 거의 없었고, 여러 의사들에게 물어봤으나 임신할 것이 아니라면 계속 복용하라는 조언 이상은 얻을 수 없었던 갤라거는 피임약 관련 데이터와 자료를 수집하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많은 여성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칼럼을 인디펜던트에 게재했다.

지난 50여년 동안 체중증가, 성욕감소, 우울증, 정신건강 악화 등 피임약 복용의 부작용은 잘 알려졌다. 2018년 BBC 다큐멘터리에서는 일부 자살욕구도 다뤘다. 피임약을 장기간 복용하면 유방암과 자궁경부암 위험을 높이고(한편 다른 암의 위험성은 낮추기도 한다), 혈전의 위험을 약간 높이지만, 이런 위험은 그리 높지는 않다.

여성들도 이런 사항들을 알고 있다. 그러나 피임약 복용을 중단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NHS(국민건강보험) 자료에 따르면 2019년~2020년 기간에 잉글랜드에서 73만1,340명의 여성이 피임용품을 사용했다(이는 보건소와 약국을 제외한 성건강클리닉만을 고려한 자료이다). 이 중 경구피임약을 사용하는 비중은 약 40%로 가장 많다.

이 비중은 2014~15년의 45%에서 감소한 것인데, 전문가들은 많은 사람들이 경구피임약에서 오래 작용하고 후에 제거할 수 있는 코일형 피임장치 등으로 바꿨다고 보고 있다.

경구피임약 복용과 이로 인한 부작용에 관한 자료는 증가하고 있지만, “왜 피임약 복용을 중단하는지”, “중단하면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지” 등 복용을 중단한 경우에 관한 자료는 여전히 거의 없다.

NHS 웹사이트에는 피임용품에 관한 가이드가 있지만, 복용중단에 관해서는 임신과 생리복귀에 관해 간단하게(정확히 269단어)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아마도 이 두 가지가 피임약 복용을 중단하는 주요 이유이며, 여성들의 주 관심사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1998년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23%의 여성들이 계속 복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복용을 중단하는 반면, 45%의 여성들은 부작용 때문에 복용을 중단한다.

피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로우다운(The Lowdown)>이 3,500명의 영국 여성들로부터 자료를 수집한 바에 따르면 78%는 원치 않는 부작용을 경험했고, 51%는 피임약이 감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복용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분명히 피임약 복용을 중단하는 사람들이 임신을 앞둔 사람들만은 아니며, 복용을 중단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공식적’ 정보가 부족하다.

피임약 복용중단으로 인한 예상상황에 관한 문제가 새로운 이슈는 아니지만, 팬데믹 기간에 다시 조명받았다. <마리 스톱스(Marie Stopes)>의 연구에 따르면 35%의 여성들은 피임약 관련 서비스 질의 저하를 경험했고, 7명 중 1명은 (처방전을 받기 위한) 진료예약을 할 수 없었으며, 10명 중 1명은 관련 클리닉이 코로나19로 인해 문을 닫았다고 답했다.

여성이 피임약 복용을 자발적으로 중단하건, 상황에 의해 강제로 중단하건 그 결과에 관한 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스테이시 벤슨(Stacey Benson, 31세)은 16년간 피임약을 복용했다. 14세 때 지독한 여드름을 앓았고, 지역보건의로부터 복합피임약 다이아넷트(Dianette)를 처방받았다. 2개월 복용 후 피부가 말끔해졌다. 이 약을 복용하는 동안 약간의 부작용으로 두통을 겪었다(간혹 암실에 누워있어야 할 정도로 심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여드름을 피하기 위해서는 감수할 정도였다.

벤슨은 23세 때부터 피임약 복용과 피부간의 딜레마를 고민했고, 50번도 넘게 복용중단을 시도했었다. 그녀는 조언을 찾아 인터넷을 뒤졌다. 첫 번째 중단 시도 때, 그녀의 피부는 너무 손상돼 사람을 만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는 다시 복용을 시작했다.

엘리스 펠튼(Alice Pelton)은 피임약과 관련된 안 좋은 경험 후에 “유용한 자료가 크게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로우다운>을 시작했다. 그녀는 수많은 여성들과 얘기한 결과, 호르몬이 안정화되는 데는 약 3번의 생리주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일반적 의견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수년 동안 피임약을 복용한 경우에는 안정화되는 데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팰튼은 “피부와 기분은 피임약 장기복용과 관련 있다. 오래 복용했을수록 복용 중단후 더 심한 피부와 기분상의 문제가 보고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짧은 기간 피임약을 복용한 여성들도 복용중단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나 데이비스(Hannah Davis)는 16세에 처음으로 복합피임약을 복용했다.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 학교가기 전 피임약을 복용했는데, 복용 1시간 후면 육체적으로 아팠고, 2시간 후에는 구역감이 들어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이런 증상을 느낀 지 3주 후, 데이비스는 프로게스테론만으로 된 피임약을 처방받았다. 구역감은 멈췄지만, 감정의 기복이 생겼다. 17살인 데이비스는 약 복용을 중단하고 감정을 안정시키고 싶어한다.

그녀는 “나는 완전히 약의 인질이 된 느낌이다. 완전하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복용을 중단했을 때 더 나빠지면 어떡하나? 인터넷상의 정보들을 읽어보니 무섭다. (복용중단의) 위험을 감수할 수 없어 이 상태로 계속 머물러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면서 (피임약 복용에는)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 현상)’ 같은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나는 이 약이 나를 도와 상황을 개선시킨다고, 이 약이 없으면 피부와 감정상태가 더 나빠질 것이라고 스스로 설득시킨다”고 말했다.

조안(Joanne, 21세)은 여드름 때문에 3년간 복합제 피임약을 복용했다. 그런데 이 약이 피로, 감정기복을 유발했다(코펜하겐 대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피임약을 복용하는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 비해 항우울제를 처방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그녀는 몇 달 동안 복용중단을 원했지만, 온라인상에서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읽고서는 두려워졌다(물론, 이들 정보들은 자기선택적 사례들이라 나쁜 경험들일 가능성이 높다).

에이미 이어들리(Amy Eardly, 30세)는 17세에 피임약 복용을 시작했는데, 1년 넘게 복용중단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조금 용기 내어 계속 복용하기로 했다”는 글을 읽고 복용중단 시도를 그만뒀다.

공식적 정보가 없어 여성들은 피임약 복용중단의 예상 상황에 대해 불확실해 하고, 블로그, 포럼, 옛날 기사 등을 통해 길을 찾게 된다. 필자와 얘기한 모든 여성들은 구글에서 피임약 중단에 관한 검색에서 얻는 결과들이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몰리 루니(Molly Rooney, 26세)는 8년간 피임약을 복용했는데, 2019년 크리스마스에 복용중단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도 체중증가와 성인 여드름이라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관한 정보만 얻었을 뿐이다.

그녀는 “이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지역보건의 예약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팬데믹 기간에 그들의 시간을 뺏기에는 너무 사소한 문제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The Brook sexual health charity>에는 NHS보다 더 명확하게 설명이 되어 있지만, “사람마다 상황이 약간씩 다를 수 있다”라는 정도다.

성보건간호사인 사라 멀린드바(Sarah Mulindwa)는 “피임약 복용을 중단한 많은 여성들에게서, 설혹 전에는 여드름이 없었더라도 여드름이 생긴다. 피임약은 호르몬을 억제하는데, 피임약을 중단하면 피부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또한 성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면서 “복용중단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최소한의 부작용으로 중단에 성공한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복용 중단의 위험을 감수해 좋은 결과를 얻은 경우도 있다.

록산느 쿠퍼-코스텔로(Roxanne Cooper-Costello, 22세)는 17세부터 복합피임약을 복용했는데, 피임약이 자신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낀 후 복용을 중단했다. 복용중단 전에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수많은 유트브를 보았다.

그녀는 “나는 내 몸의 변화에 대해 너무 아는 것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믿음이 통했다면서 “첫날에 해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더 이상 노예 같다는 생각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멀린다 간호사는 “몸이 정상 생리주기로 돌아오는 데는 최대 3개월이 걸린다. 생리주기가 안정되면 여드름 같은 관련 문제도 개선될 것”이라고 말한다.

성보건클리닉 <SH:24>의 폴라 바렛세(Paula Baraitser) 박사는 피임약 복용을 중단하려는 사람은 편익과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복합제의 경우, 편익(여드름 감소, 생리통 감소, 제어가능한 출혈 등)과 비용(두통, 구역감, 유방통, 또는 감정기복 등)을 고려해야 한다. 어렵고 복잡한 결정이고, 생활환경과 성생활 스타일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등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도 변화한다”고 설명했다.

소피 갤라거는 (피임약의) 부작용에 대한 연구는 증가하고 있지만, 피임약 복용 중단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는 것에 대해 “역사적으로 여권(女權)에 대한 가장 위대한 의료혁신이 나온 지 60년을 맞이하면서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