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고용평등법’ 이미 30년 전에 만들어져

○ 남성이 100만원 벌 때 여성은 68만8천원밖에 못 벌어

“이번 개정안은 근로자가 사업주에게 동일노동 근로자의 임금정보를 청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한 근로자의 판단기준을 제공하고 사용자의 동일임금 준수 노력을 촉진하고자 하는 것이다.” 

2017년 9월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남녀고용평등법)을 대표 발의하면서 이 같은 취지를 밝혔다. 

일명 ‘김지영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안은 현행법 상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 정확하게는 동일가치 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은 현행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제8조제1항에 ‘사업주는 동일한 사업 내의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하여는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라는 내용으로 명시되어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도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性)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ㆍ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는 조항(제6조)을 통해 포괄적인 범위에서 근로자 차별을 금하고 있다.

○ 제도적 성숙을 따라가지 못하는 인식과 관행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성별임금격차 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남녀임금격차가 가장 큰 회원국이다. 그것도 조사를 발표한 2000년도 이후 지금까지 계속 1위였다.

또한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지난 7월에 발표한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남성임금 대비 여성임금 비율은 2018년 기준 68.8%에 불과했다. 남성이 100만원을 벌 때 여성은 68만8천원을 번다는 뜻이다. 더구나 지난 1998년 63.1%에서 20년 동안 5.7% 밖에는 개선되지 못했다.

(자료 = 통계청·여성가족부 제공)
(자료 = 통계청·여성가족부 제공)

법이 있는데도, 심지어 「남녀고용평등법」은 제정된 지 30년이나 됐는데도 남녀 임금격차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제도적 성숙을 따라가지 못하는 인식의 한계도 있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동일노동 근로자의 임금정보 청구권은 남녀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혁신적인 방안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동료의 월급을 아는 것까지 법으로 만든다’고 해서 지나치게 행정주의적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남녀 임금격차는 비단 우리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이며, 그 심각성을 인식한 일부 국가에서는 적극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 성별 임금정보 공개를 법으로 정한 북유럽 국가들

특히 인권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북유럽 국가들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법제화했다.

덴마크는 2006년부터 35인 이상을 고용하는 사업주에게 성별로 구분된 남녀간 임금 정보를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수민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임금정보 청구권이 포함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덴마크의 사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강력한 법 집행을 통해 남녀 임금격차를 현격하게 줄인 나라는 따로 있다. 바로 벨기에이다. 2000년에는 중위임금(평균이 아닌 중간 구간 임금수치) 기준 남성의 86.4%였던 여성의 급여는 2016년에 이르러 97%까지 높아졌다. OECD 국가 평균 14%와 비교하면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다.

벨기에는 50인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2년마다 성별과 직급을 구분해 임금구조 분석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했다. 또한 공기업은 이사직의 3분의1은 소수 성별로 채우도록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그 사유를 설명하는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스웨덴에도 비슷한 법이 있다.‘동등기회법(Equal Opportunities Act)’은 10인 이상을 고용하는 고용주에게 매년 임금 지급 관행과 임금 격차를 분석하고 동등 임금을 확보하기 위한 실행 계획을 제출할 것을 요구한다. 

○ 동일노동 동일임금 문제가 이슈화됐던 영국

영국은 지난 2-3년간 남녀 임금격차 문제가 크게 불거졌다. 특히 2018년 3월 BBC가 중계한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함께 해설자로 나선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와 존 멕켄로의 수당이 공개되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문제가 이슈화됐다.

출처-나무위키
출처-나무위키

나브라틸로바는 윔블던에서 9회나 우승하는 등 1980년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테니스 스타인데, 그럼에도 똑같이 해설을 맡은 존 멕켄로가 받은 수당의 1/10밖에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었다.

이보다 몇 달 앞서 역시 BBC의 중국 편집장이었던 캐리 그레이시는 돌연 사직서를 던졌다. 업무가 비슷한 남성 동료보다 임금이 적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같은 일, 혹은 같은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남성이 임금을 더 받는다는 것은 차별이고, 불법”이라는 것이 캐리의 사퇴 일성이었다.

영국에는 2010년 이미 평등법(Equality Act 2010)이 제정되어 같은 일을 하는 남성과 여성은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2018년부터는 직원수 250명 이상의 기업은 남녀 직원의 연봉차이를 공개적으로 보고하도록 규정했다. 

○ 동일노동 근로자의 임금정보 청구권 보장한 독일,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총리, 폰데라이엔 EU집행위원장 등 정치권의 여성 파워가 센 독일은 지난 2017년부터 ‘임금투명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 법안은 근로자에게 동일노동을 하는 동료의 임금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을 위해 제정됐다.

최근 독일 일간지 자이트는 ‘임금투명법’이 성별 임금격차를 전혀 줄이지 못했다고 법안 시행 2년을 평가했다. 

즉, 평가 설문에 참여한 근로자의 절반이 이 법을 전혀 알지 못했고, 지금까지 겨우 2%만이 성별이 다른 동료의 임금정보를 회사에 요구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성별 동일임금에 대한 입증책임이 회사가 아닌 여성에게 있다는 것도 이 법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이렇듯 남녀 임금격차는 제도적인 부분 뿐 아니라 사회적인 관행과 인식의 문제에 기인하는 부분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의 생각과 관행을 바꾸는 노력도 중요하다. 성 고정관념을 깨는 교육과 캠페인 등도 함께 지속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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