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솜방망이 처벌, 성희롱 가볍게 보는 인식은 여전

○ 미투운동 잠잠한 사이 성추문 사건은 연일 터져

지난 13일 세계적 테너인 플라시도 도밍고의 성희롱과 성추행 의혹이 불거졌다. 목격자만 3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12일 우리 정치권에서는 동료 여성 의원을 성희롱 했다는 의혹을 받는 목포시의회 김훈 의원이 제명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지난 2017년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 추문을 폭로하면서 시작된 미투운동은 전세계적으로 확산됐고,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18년 1월, 검찰청 내부 성 추문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를 시작으로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미투운동은 한국 사회를 뒤흔들면서 위계를 앞세워 성적 일탈을 일삼는 잘못된 성인식에 경종을 울렸고, 성범죄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 정화작용을 할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하지만  그 후 1년 반 이상 지난 지금, 오히려 장르를 막론하고 연일 성 추문 사건이 터지고 있다.  많은 여성들의 용기와 희생으로 이뤄진 미투운동을 비웃기라도 하듯. 

 

○ 직장인 10명 중 4명 성희롱 당한 경험 있어

‘직장 내 성희롱’도 여전하다. 지난달 23일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4명이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6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부처 사이트의 ‘직장 내 성희롱 익명 신고센터’에 접수된 건수는 총 717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상급자인 경우는 전체 건수의 80%에 이르렀다. 

2017년 인권위가 접수한 성희롱 진정사건도 296건으로 10년 전인 2017년에 비해 80% 정도 증가했다.

성희롱 가해자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 받아

도밍고가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같은 날 언론매체 보도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유일의 기초과학 전문연구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외국인 연구원이 여성 연수 학생을 성희롱한 사실이 드러났다.
 
IBS의 조사를 거쳐 가해자에게 3개월 감봉 처분이 내려졌지만,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윗선에서 사건을 무마하려는 정황도 포착돼 더 큰 논란을 낳았다. 

또한 후배 여성 기자와 아나운서들을 반복적으로 성희롱을 한 KBS 남성 기자는 정직 6개월 징계 처분이 부당하다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고, 위원회는 징계양형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례는 성희롱 행위에 대한 가해자의 안일한 인식, 그리고 직장 내 위계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의 맥락을 무시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부적절한 대응을 잘 보여준다.

성희롱과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한국외국어대 S교수의 경우 단 3개월의 정직처분이 내려졌으며, 최근에는 가해자임에도 장기근속 포상을 내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최근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에서는 성희롱 전력이 있는 직원을 행정실 부장으로 채용해 논란을 빚었다. 학교 관계자는 형사 처벌되지 않아 법적 처분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 신고센터 있어도 가해자 징계는 8.8%에 불과

성희롱을 가볍게 보는 사회적 분위기와 별개로 법적 보호조치가 미약하다는 것도 또 다른 문제다. 

고용노동부 ‘직장 내 성희롱 익명신고센터’에는 신고건수가 하루 평균 2건 정도 되는데, 후속 조치가 충분치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접수된 신고 중 대부분은 행정지도에 그치고, 징계 조치 없이 사건이 무마된 경우가 전체 건수 중 24.8%나 되었다. 특히, 가해자가 징계를 받은 경우는 8.8%에 불과했다. 

신고는 꾸준히 접수되지만, 그에 따른 처분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되려 회사 이미지를 실추했다며 피해자를 해고하거나 초기 대응이 제대로 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었다. 

성희롱을 아예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이 산업재해로 인정되는 경우는 2013년 1건, 2014년 2건, 2015년 2건, 2016년은 8건으로 매년 조금씩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피해 사실의 인정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2, 3차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고, 피해자들이 산재 인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해외에서는 175년형의 징역이 선고된 사례도 있어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프랑스의 경우는 지난해 8월 세계 최초로 ‘성차별적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다.. 정식명칭은 ‘길거리 및 교통수단에서의 성차별적 괴롭힘에 관한 법’으로 범칙금 90유로, 피해자가 15세인 경우 가중처벌을 받아 1500유로가 부과된다.
 
미국에서는 미국 여자 체조팀 선수들을 성추행, 성폭행한 대표님 닥터 래리 나사르에게 징역 175년형이 선고됐다. 나사르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무려 13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투 캠페인의 영향으로 결성된 ‘타임즈업’ 이라는 단체도 있다. 이 단체는 헐리우드 여배우들과 작가 등이 직장 내 성폭력과 성차별 문제 해결을 위해 결성됐는데, 최근 주요 후원자인 배우 엠마 왓슨이 영국 내 직장성희롱 피해 여성을 위한 무료 법률 상담전화 개설을 지원한 바 있다.

○ 사회적 인식과 법적 조치의 변화 이뤄져야

미투 운동을 통해 권력의 상하구조 아래 성희롱과 성폭력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던 시대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뤄졌지만, 소기의 성과에는 미치지 못했다. 아직 사회적 인식과 법적 조치의 변화는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반성과 각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작년 조배숙 민주평화당 대표가 직장 내 발생하는 성희롱과 성폭력을 업무상 재해의 한 유형으로 규정하도록 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다행히 조금이나마 변화의 기류도 감지된다. 

앞으로 교대와 사범대 학생들은 성희롱 ·성폭력 예방교육 과목을 들어야만 교원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또 관련 징계 이력이 있으면 교원자격을 주지 않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한다. 
    
작년 5월부터는 법정의무교육 중 하나인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의 사업주의 조치 의무가 강화됐다. 직종과 관계없이 기업이라면 반드시 연 1회 1시간 이상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이를 위반한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지난 6월부터는 성인지 교육 대상 공무원에 한정되었던 성인지 교육 의무화를 확대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소속 모든 공무원이 성인지 교육을 받게 됐다. 아직은 선언적 의미이지만. 구체적 내용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다.

아직 법적 조치는 미비하더라도 힘을 모아 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고무적인 상황이다. 

최근 이화여대에서 무용학과 겸임교수로 임명된 양 모 씨가 과거 갑질과 성희롱 전력이 드러나 임용 취소 결정이 내려진 사례가 있었다. 임용 취소 결정까지 이대 재학생들과 졸업생들까지 해당 교수의 채용 번복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나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광주·전남 지역 여성단체가 10일 오전 광주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남도학숙 내 여직원 성희롱 사건과 관련해 운영 주체인 남도장학회에 행정소송 취하를, 광주시·전남도에는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사진=-'남도학숙 성희롱 및 직장 내 괴롭힘' 사건 피해자 지지 광주 모임 제공)
 광주·전남 지역 여성단체가 10일 오전 광주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남도학숙 내 여직원 성희롱 사건과 관련해 운영 주체인 남도장학회에 행정소송 취하를, 광주시·전남도에는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사진=-'남도학숙 성희롱 및 직장 내 괴롭힘' 사건 피해자 지지 광주 모임 제공)

 

지난달 10일, 광주지역 시민단체들이 광주시의회 시민소통실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남도학숙 내 성희롱과 직장내 괴롭힘 사건과 관련해 남도학숙 측에서 제기한 산재 인정 취소 행정소송 취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서울 남도학숙 앞과 전남도청 앞에서도 동시에 진행됐다.

어제는 74주년을 맞이하는 광복절이었다. 궂은 비에도 ‘NO아베’를 외치는 10만 명의 촛불이 광화문을 수놓았다. 

힘을 모으는 움직임이 클수록 변화는 더 빠르게 다가온다. 피해자가 망설임 없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아니 권력을 앞세워 약자를 희롱하는 일 없는, 공정하고 안전한 세상이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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