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 강화해 올바른 성인식 갖게 하자는 목소리 높아

디지털 성범죄 피의자 중 10대가 30% 넘어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신상이 공개됐을 때 10여가지의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나이가 겨우 25세라는 것에 놀란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조주빈의 공범으로 체포된 일명 ‘부따’ 강훈은 2001년생으로 아직 미성년자이다.

n번방 등 디지털 성범죄 핵심 피의자인 ‘태평양원정대’ 운영자 이모(16)군, n번방 2대 운영자인 ‘와치맨’ 전모 씨에게서 대화방을 이어받은 ‘커비’ 조모(18) 군, 로리대장태범 배모(19) 군 등은 모두 고등학생이다.

심지어 텔레그램 n번방과 유사한 인터넷 채팅 메신저 '디스코드'에서 대화방을 운영한 12세 소년도 있다.

21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텔레그램 등 SNS 이용 디지털 성범죄 단속으로 검거된 총 인원은 309명이다. 그 중 10대가 94명(30.4%)으로 20대(130명·42%) 다음으로 많았다.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10대의 정서는 그 이전에 아날로그를 경험했던 세대와는 다르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고, 유튜브, SNS 등 온라인 공간에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고 정상적으로 성(性)을 접하기보다는 음란물 등을 통해 왜곡된 성의식을 갖게 될 가능성이 많다.

가정에서는 여전히 성교육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고, 학교의 성교육은 유명무실하다. 성적 호기심이 폭발하는 10대에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하니 10대 성범죄를 비난만 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공교육 과정에서 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N번방, 박사방의 실체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대학생 추적단 ‘불꽃’은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디지털성범죄사회를 극복하는 최우선 과제로 성범죄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함께 성교육 패러다임의 변화를 꼽았다.

여학생에게 회피의 기술 가르치는 성교육 표준안

전문가들은 전국 초·중·고등학교의 모든 성 관련 교육의 바탕이 되는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2015년 개정)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교육부 성교육 표준안은 성범죄에 관해 여학생에게만 '피해자 되지 않기'를 가르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일예로 <성폭력 예방과 대처>에 나온 일부 내용을 보면, ‘지하철 성추행’에 대해 *가방끈을 길게 뒤로 맨다 *이상한 느낌이 들면 즉시 자리를 피한다, 등으로 적극적인 대응이 아닌 회피의 기술을 가르친다.

참고로 경찰청의 지하철 성추행 대처법은 *소리를 질러 피해사실을 주변에 인지 *특정인을 지목해 도움을 요청한 뒤 112에 신고 *겁이 나서 대처하기 어려운 경우는 문자로 112에 신고 등 구체적인 행동 요령이다.

 

©성교육 표준안
©성교육 표준안

심지어 ‘이성친구와 단둘이 집에 있을 때’의 상황 대처법은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이다.

애들 말장난도 아니고, 기껏 상황을 제시해놓고, 그런 상황을 만들지 말라는 것을 대처법이라고 하니 이것이 과연 교육부가 학생들을 가르치라고 내놓은 성교육 표준안이 맞는지 의심스럽기조차 하다.

이런 수준의 성교육 표준안이 지난 5년 동안 유치원과 초·중·고의 모든 성교육 및 성폭력 예방 교육의 지침으로 쓰였다.

이를 바탕으로 하는 일선 학교들의 성교육이 10대들에게 올바른 성인식과 성지식을 갖추는 데 어떤 역할을 했을지 굳이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듯하다. 요즘의 표현으로 ‘1’도 도움이 안됐을 것이다.

외국에서는 구체적인 성지식과 함께 윤리교육 병행

다른 나라들의 성교육은 어떨까

1897년 세계 최초로 학교 성교육을 시작한 스웨덴을 비롯해 핀란드, 독일, 미국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을 가르친다.

우리나라는 남녀 생식기 구조, 임신 출산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에 그치는 데 비해 해외에서는 임신과 출산 뿐 아니라 자위, 콘돔의 중요성, 성병 등을 알려주고, 고학년이 되면 실제 피임기술도 가르친다.

미국 버몬트 주 출신의 방송인 타일러 러쉬씨는 한 인터뷰에서 성교육에서 콘돔을 바나나에 씌우는 연습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성교육이 자칫 문란한 성생활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이들 나라에서 성지식만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성에 대한 올바른 윤리교육을 병행하고, 성을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 배려하는 책임 있는 행동으로 인식시킨다.

제대로 알고 선택하고 대처하는 것과 잘못된 성지식을 남용하는 것의 결과는 말 그대로 ‘하늘 땅 차이’다.

성담론을 기피하고, 성교육을 소홀히 하다가 10대 성범죄자들이 급증하는 작금의 사태가 벌어졌다.

교육부는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전문가들과 함께 성교육 표준안 개정 방향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10대들의 특성을 감안한 실질적인 성교육 지침을 만들고, 성교육 체계를 바꾸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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