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감형된 6년 징역형...판결에 불복하고 상고

여성을 집단 성폭행하고 불법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정준영(31)씨가 12일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1심이 선고한 징역 6년보다 형량이 낮아졌다. 함께 재판을 받은 최종훈(30)씨는 1심의 징역 5년보다 절반 가까이 형이 깎인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13일 법원에 따르면 정씨 측은 항소심 선거 하루 만인 이날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판사 윤종구)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감형을 받았지만,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는 것이다.

정씨는 2015~2016년경 상대방 동의 없이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성관계 동영상이나 사진 등을 카카오 단체채팅방에 공유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2016년 3월 대구에서 최씨와 공모해 피해 여성들을 집단 성폭행한 특수준강간 혐의도 받고 있다.

1심은 “피고인들 나이가 많지 않지만 호기심으로 장난을 쳤다고 하기에는 범행이 너무 중대하고 심각해 엄중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정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성폭력특례법상 특수준강간 혐의의 법정 형량은 무기징역에서 징역 5년 사이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2심의 판결은 달랐다.

재판부는 정씨에 대해 “항소심에서 합의를 위해 노력했지만 현재까지 합의서가 제출되지 않았다”면서도 “본인이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측면에서 본인의 행위 자체는 진지하게 반성한다는 취지의 자료를 낸 점 등을 고려했다”고 감형 사유를 밝혔다.
 

합의할 시간 벌려고 선고 기일 연기 요청해

이 판결문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합의, 인정, 반성, 이 세가지다.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와의 합의가 중요한 양형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면서 피해자와 합의를 하면 초범의 경우엔 집행유예로 종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7일 선고가 예정돼 있었던 정씨의 항소심이 12일로 연기된 것은 정씨가 피해자와의 합의 시도를 위해 선고기일 연기를 재판부에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씨는 감형을 위해 피해자와의 합의가 절실했던 것이다.

올해 2월 여자 후배에게 술을 먹인 뒤 성폭행을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남성 2명이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 논란이 됐었다. 이 사건의 판결에서도 피해자와의 합의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주목할 것은 재판부가 언급한 “진지하게 반성한다는 취지의 자료를 낸 점”이라는 대목이다.

실제로 성범죄 양형기준에서 ‘진지한 반성’은 감경요소가 된다. 그래서 피고인들은 ‘진지한 반성’을 입증하기 위해 반성문을 제출하거나 기부를 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한다.
 
2018년 엄청난 규모의 아동 음란물 ‘다크웹’을 운영하고도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손정우씨는 재판부에 500장이 넘는 반성문을 제출했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구속)의 공범으로 알려진 사회복무요원 강모(24)씨 역시 재판부에 여러 차례 반성문을 제출했다. 강씨의 반성문을 본 재판부는 “이런 반성문은 안 내는 게 낫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조주빈의 지시로 미성년자를 성폭행하고 그 영상을 촬영해 조주빈에게 전송한 혐의로 구속된 한모씨도 재판부에 10여 차례나 반성문을 제출했다. 이를 두고 감형을 노린 꼼수라는 비난이 일었다.

감형 사유는 ‘진지한 반성’, 어떻게 입증하나?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1~11월 선고된 137건의 성범죄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35%에 해당하는 48건에서 ‘반성 및 뉘우침’이 양형 요소로 작용했다. 판결문에는 대체로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자백하면서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은 유리한 정상이다"라고 기록됐다.

그러나 ‘반성’의 근거로 제시된 자료는 피고인의 반성문이나 일방적인 후원・기부, 사회봉사 자료 등으로 매우 빈약했다. 최근 반성문 대필 업체가 성행하고 ‘성범죄 대응 매뉴얼’, ‘양형시 제출서류 팁’ 등이 공공연히 포털사이트 광고로 등장하는 상황이지만, 법원의 감형은 너무 쉽게 이뤄지고 있다고 상담소 측은 지적했다.

사진= 반성문 대필 광고 실은 포털의 한 카페 문구 캡처
사진= 반성문 대필 광고 실은 포털의 한 카페 문구 캡처

상담소는 지난 2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형식적 기준을 넘어 진지한 반성이 확실히 드러날 때만 감경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진지한 반성’은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피의자의 진심을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사방 조주빈의 공범인 강모씨는 자신이 스토킹 했던 고등학교 교사 A씨의 딸을 살해해 달라며 조씨에게 400만원을 건넨 살인음모혐의도 있다. 강씨는 A씨를 9년간 스토킹 했고, 상습협박 혐의로 세 차례 경찰 수사를 받았다.

2012년 16세 때는 소년보호처분을 받았고, 2018년 3월에는 기소돼 1년 2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재판부는“피고인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정신과적 증상 등이 있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다던 강씨는 출소 후 다시 B씨를 협박해 지난 1월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반성’했다고 감형 받은 피의자가 출소 후 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반성’이라는 것이 얼마든지 형식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진지한 반성’을 감경 요소로 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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