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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3일 서울 노원구에서 발생한 세 모녀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태현이 9일 포토라인에 섰다.

경찰은 이 사건을 스토킹 살인사건으로 규정했다. 피의자 김태현은 피해자 중 큰 딸 A씨를 지난 해 온라인 게임을 통해 처음 알게 된 후 연락을 주고받다가 3차례 만나면서 호감을 갖게 됐다.

지인들과 함께 만난 세 번째 만남에서 두 사람은 말다툼을 했고, 이후 A씨는 김태현에게 만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전달한 후 수신을 차단했다. 그럼에도 김태현은 공중전화나 지인을 통해 A씨와 연락을 시도했고, A씨 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A씨로부터 어떤 답도 듣지 못하자 결국 살해를 결심했다.

김태현은 평소 자주 쓰지 않던 본인의 다른 아이디로 게임 사이트에 접속해 다른 사람을 가장해 A씨에게 접근했고, A씨의 근무일정을 확인했다. 그리고 A씨 집으로 가서 퀵서비스 기사로 위장해 집안으로 들어가 세 모녀를 차례로 살해했다.

김태현에게는 살인 혐의 외에 절도·주거침입·경범죄처벌법(지속적 괴롭힘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침해) 위반 등 5개 혐의가 적용돼 서울 북부지방검찰청으로 송치됐다. 김태현의 스토킹 행위에 경범죄가 적용된 것은 최대 징역 5년까지 가능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은 시행 전이기 때문이다. 이 법은 오는 10월부터 시행된다.

스토킹 행위를 범죄로 인식하고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법안이 처음 발의된 건 15대 국회 때인 지난 1999년 김병태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이 발의한 스토킹 처벌에 관한 특례법안이었고, 이후 21대 국회까지 총 23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번번히 입법화되지 못하다가 지난달 24일에서야 국회를 통과했다. 특히 스토킹 처벌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기 하루 전에 세 모녀가 살해돼 이 법이 빨리 시행됐더라면 김태현의 살인행각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20, 21대 국회에서 스토킹 처벌법을 발의했던 정춘숙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은 스토킹 범죄는 성폭력, 폭행, 살인 등의 전조현상으로 불릴 만큼 심각한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경범죄로 취급돼 처벌이 미미했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지난 해 한 TV 방송에 출연해 지난 2016년 법안 발의 후 열린 법사위 검토보고서 내용을 인용했는데, 그에 따르면 스토킹은 행위 유형이 다양하고 단순 애정 표현이나 구애와 구분하기 어려우며 심각한 스토킹은 형법상 폭행죄, 협박죄, 강요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으면서 별도 법률을 신중해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피해자에게는 극도의 공포와 위협을 느끼게 하는 스토킹 행위를 가해자 중심으로 인식해 사소한 애정 행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스토킹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었고, 이런 이유로 스토킹의 위험성이 경시됐다. 스토킹을 경범죄로 처벌하기 시작한 것이 불과 8년 전인 지난 2013년이었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실제로 스토킹 범죄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지난 해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 건수는 지난 2013312건에서 2019583건으로 6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않는 상황을 고려하면 실제 피해는 이보다 더 많은 것으로 추측된다.

법안 통과로 이제 스토킹 범죄는 더는 범칙금 10만원의 경범죄가 아니라 최대 징역 5년을 받는 중범죄로 처벌받게 됐다.

하지만 아직 해결과제가 남아있다. 법안 통과 후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성폭력 처벌법상 처벌이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카메라 등 디지털 촬영을 이용한 스토킹 행위를 법 안에서 규정하지 못한 점, 피해자 보호명령 및 신변안전조치에 대한 규정이 명시되지 않은 점 등은 반드시 향후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후속입법화에 대한 국회와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며, 스토킹 처벌법이 폭행이나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엔 여전히 미흡하다는 우려에 대한 보완대책 마련도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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