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소환한 어제의 오늘-1960년 5월 9일

인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품들이 많지만, 여성의 삶에 큰 이정표를 남긴 의미있는 발명품을 꼽으라면 피임약이 첫 손에 꼽힐 것이다.

196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제약사인 썰(G.D Searle)사의 산아제한용 피임약 에노비드10(ENOVID-10)을 정식 승인했다. 세계 최초의 경구 피임약이 탄생한 순간이었고, 여성들이 임신의 공포에서 벗어나 스스로 임신을 선택하고,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에노비드는 여성운동가인 마거릿 생거(1879-1966)와 미국의 내분비학자인 그레고리 핀커스(1903-1967) 박사의 오랜 신념과 노력의 결과물이다.

생거의 어머니는 생전 많은 자녀를 낳았는데, 생존한 자녀가 생거를 포함해 열명이나 됐다. 어머니는 열여덟번째 임신을 한 후 4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생거는 그런 어머니의 삶을 보면서 대책없는 임신이 여성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절감했고, 그것이 그가 산아제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생거는 보건 간호사가 됐고, 본격적인 산아제한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에서 환자를 돌보며 신문과 책자를 발행해 다양한 피임방법을 소개했다.

미국은 1873년에 제정된 콤스톡법(The Comstock Act)에 따라 어떤 형태의 피임기구라도 풍속을 교란하고 외설적인 것이다라고 규정이 엄격했고, 피임기구를 사용, 유통하거나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하는 행위는 불법이었다.

결국 생거는 콤스톡법 위반으로 수감되기도 했지만, 석방된 후에는 오히려 활동 범위를 넓혀 1923년 최초의 산아제한 진료소(피임센터)를 열었고, ‘미국가족계획연맹(American Birth Control League)’에 이어 국제가족계획연맹(IPPF)’을 결성했다.

세계 최초의 경구피임약 에노비드(출처-유튜브)
세계 최초의 경구피임약 에노비드(출처-유튜브)

생거는 1950년 핀커스 박사를 만나 피임약 개발을 의뢰했고, 오랜 설득 끝에 백만장자의 후원을 받아 썰사와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
썰사는 여성 897명을 대상으로 에노비드의 안정선 검증까지 마치고 195910월에 FDA에 에노비드의 경구피임약 승인을 신청했지만, 여론을 두려워한 FDA는 승인절차를 계속 지연시켰다.

가톨릭 등 종교계의 반대도 심했고, 일부 여성운동가들은 피임의 의무가 여성에게만 부과될 것이라고 우려해 반대했다. 그러나 피임약을 기다리는 여성들의 열망은 컸다. 과거에 여성들은 생기는대로아이를 낳았다. 생거의 어머니처럼 가임기간 내내 출산을 하다가 건강을 잃고 목숨을 잃는 여성들이 정말 많았다.

에노비드는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고, 임신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해서 여성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생산적으로 영위할 수 있게 했다.

 

경구피임약(출처-pixabay)
경구피임약(출처-pixabay)

한국에는 19637월에 독일 쉐링사의 경구피임약 아나보라가 처음 시판됐다. 당시 정부는 가족계획의 일환으로 보급됐다. 이후 1968년 에노비드가 수입됐다.

먹는 피임약의 성공률은 복용법을 잘 지켰을 경우 98~99%에 달한다. 그럼에도 메스꺼움이나 구토, 소화불량 등의 부작용이 있어 복용을 꺼리는 여성들이 많다.

경구 피임약 외에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피임방법은 루프와 같이 체내에 삽입하는 피임기구, 3개월에 한번씩 허벅지나 복부에 놓는 피임주사, 피부에 붙이면 배란을 억제하는 성분이 체내에 흡수되는 피임패치, 성관계 후 72시간 이내에 복용하는 사후 피임약 등이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콘돔 사용률은 201137.5%에서 201874.2%로 약 2배 늘었고, 경구피임약 복용률도 같은 기간 7.4%에서 18.9%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인공임신중절(낙태)도 급감해 여성 1,000명당 인공임신중절 건수는 201015.8건에서 20174.8건으로 70% 가까이 감소했다.

그럼에도 임신중절을 시행한 여성도 2017년 기준 한해 5만 건 안팎으로 추정된다. 피임하지 않거나 잘못된 피임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임신중절을 한 여성 중 47.1%가 질외사정법·월경주기법 등 불완전한 피임방법을 사용했고, 피임하지 않은 비율도 40.2%나 됐다.

피하이식제, 자궁 내 장치 등 시술로 이루어지는 피임법은 실패율에 차이가 없지만, 경구피임약과 콘돔 등 개인이 하는 피임법은 상대적으로 실패율이 높은 편이다.

피임 방법에 따른 피임 실패율을 보면 피하이식제(피임제를 팔 안쪽 피부에 이식)0.05%로 가장 낮고, 경구용 호르몬 피임약 0.3%, 구리자궁내장치(구리가 감긴 루프 모양의 장치를 자궁 안에 넣어 수정란의 자궁 내 착상을 막는 피임법) 0.6%, 콘돔 2%, 질외사정 4% 순이다.

이는 피임 방법을 정확하게 사용했을 때의 수치이며, 실제 사용 후 보고된 실패율은 피하이식제 0.05%, 구리자궁내장치 0.8%, 경구용 호르몬 피임약 8%, 콘돔 15%, 질외사정 27% 정도로 나타났다.

영구피임법으로는 난관수술과 정관수술이 있다. 난관수술은 일명 배꼽 수술로 배꼽 주위를 1cm 가량 절개해 복강경으로 양쪽 난관을 묶는다. 피임효과는 확실하지만, 다시 임신을 원할 경우 복원수술을 받아야 한다.

정관수술은 정자가 이동하는 통로인 정관을 자르고 잘린 두 끝을 꿰매 정자의 이동을 차단하는 방법이다. 생식력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정관 복원술을 받아야 한다. 이 경우 성공률은 80~90%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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