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의 이유

20여년 동안 경제권을 쥐고 기본 생활비만 주고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남편에게 살충제를 먹인 아내의 이혼 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였다.

20108월 서울고법 가사2(조경란 부장판사)남편의 일방적인 경제권 행사, 아내가 남편에게 농약을 먹인 사건 등 혼인관계가 쌍방의 책임으로 더는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파탄된 만큼 두 사람은 이혼하라고 판결했다.

1979A씨는 남편 B씨와 결혼해 21녀를 두었다. 남편은 A씨에게 적은 생활비만 주고 필요할 때마다 돈을 타 쓰게 하는 등 일방적인 경제권을 행사했고,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아내와 자녀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일삼았다.

20055월 술에 취해 귀가한 남편이 욕을 하면서 자신을 밀쳐 넘어뜨리자 화가 난 A씨는 물을 달라는 B씨에게 방역용 살충제를 그릇에 부어 건넸다. B씨는 식도협착증으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고, 이로 인해 A씨는 살인미수 혐의로 입건됐다가 B씨의 선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살충제 사건을 비밀로 할 테니 잘 살아보자B씨는 약속과 달리 A씨의 친정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말하며 치료비를 요구했고, 동네 사람들에게 농약을 먹여 나를 죽이려 했다고 말하고 다녔다. 또 이 사건을 언급하며 A씨를 폭행하기도 했다.

20086A씨는 이혼을 결심해 변호사 상담까지 했다가 자녀들의 설득으로 B씨와 생활비 지급, 한 달에 두 번 가족 외식, 부부 산행 등을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A씨는 그 두 달 후 남편을 상대로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냈다.

200991심 재판부는 “A씨가 순간적으로나마 B씨를 살해하려 한 점 등을 고려할 때 혼인파탄에 대한 주된 책임이 B씨에게 있다고 보기 어렵다A씨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살충제를 먹인 아내의 행동은 남편의 독선적인 태도와 지나친 구속 등으로 유발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B씨는 A씨에게 재산의 40%13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그러나 A씨가 요구한 위자료(1억원)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혼인관계 파탄의 책임이 양쪽에 있고 A씨가 살충제를 먹여 B씨에게 회복하기 힘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입혔다는 이유에서다.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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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법은 1965년 대법원 판례를 통해 유책주의 원칙을 채택해 이혼을 다루고 있다. 유책주의는 부부 중 어느 한쪽에 이혼의 책임이 있을 때 다른 한쪽이 이혼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어느 한쪽의 잘못이 명확해야만 이혼이 인정된다.

살충제를 남편에게 먹여 살인미수 혐의로 입건됐던 아내가 제기한 이혼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인 것은 남편의 일방적인 경제권 행사 등이 혼인 파탄의 원인이 됐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경제권은 부부 갈등의 주요 원인이다. ‘누가 경제권을 갖느냐는 결혼의 주도권 경쟁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맞벌이가 많은 요즘은 각자 자기 수입을 관리하는 가정도 많은데, 이런 방식이 개인적으로 느껴져 부부 관계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팀과 함께 기혼부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부부간의 대화 및 경제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부 경제권이 아내에게 있는 경우가 39.6%로 가장 많았다. 34.6%는 공동 관리를 이상적인 방식으로 꼽았다.

경제권에 대한 미혼남녀들의 생각은 또 달랐다.

한국이혼상담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혼 남녀의 67%는 누가 경제권을 갖기보다는 각자 관리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아내(26%), 남편(7%)이란 답변보다 훨씬 많은 수치였다. 또 미혼자의 66%경제권에 대한 의견이 다르면 결혼을 재고할 수 있다고 답했다. 교제나 결혼 준비 과정에서 경제권에 대한 충분한 협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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