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 파고든 GHB…범죄는 진화하는데, 법은 제자리

'버닝썬 게이트'의 주요 인물인 가수 승리와 정준영(출처-위키피디아)
'버닝썬 게이트'의 주요 인물인 가수 승리와 정준영(출처-위키피디아)

빅뱅 멤버 승리가 연루돼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201811월 버닝썬 사건에서 남성 고객들이 여성을 강간하기 위해 물뽕이라고 불리는 마약인 감마 하이드록시낙산(GHB)을 술에 타서 먹이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아예 클럽 MD(머천다이저)가 이를 유통하기까지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에 악용되는 GHB가 세상에 알려졌는데, 그 후 성범죄 약물은 더욱 다양해졌고, 술이나 음료에 약을 넣어 여성에게 권한 후 성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이제 클럽을 넘어 일상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9MBC TV 시사교양물 ‘PD 수첩은 버닝 썬 사건 이후 3년이 흐른 지금까지 제대로 된 대안조차 나오지 않고 있는 약물에 의한 성범죄 실태를 보도했다.

제작진은 GHB가장 악랄한 강간 약물이라고 했다. GHB는 색과 냄새, 맛이 없는 중추신경 억제제다. 체내 흡수가 빨라 15분 내 몸이 이완되고 환각이나 흥분 작용을 동반한다. 피해자들은 순식간에 의식을 잃었고, 기억이 사라졌다고 했다.

또 투약 6시간 정도 지나면 대부분 몸에서 빠져나가 검출하기 어렵다. 이유 없이 의식을 잃었고, 그 사이에 성폭행을 당하고 불법촬영물이 남았는데, 그것이 약물에 의한 피해라는 증거가 없는 것이다.

피해자들에게는 공포의 약물, 반면 성범죄를 저지르기 매우 용이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GHB를 비롯한 강간 약물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GHB는 양산하기 쉽고 가격이 몇만원대로 저렴해서 유흥가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이미 많이 유포된 상태다.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GHB의 원료인 감마부티로락톤(GBL)1군 임시마약류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는 마약류 제조와 유통에 해당되는 것이며, 이를 성범죄에 악용하는 경우에 처벌할 법적 조항이 없는 현실이다.

GBL1군 임시마약류이기 때문에 이를 소지·사용·운반·관리한 자는 최소 1~30년 징역에 처해지는 반면 GHB를 소지·관리한 자의 처벌은 징역 5년 이하다. GHB는 전자제품 제조 등 산업현장에서도 쓰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산업 원료적 측면 뿐 아니라 성범죄 악용 가능성을 고려해 GHB도 마약류에 포함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2018년 버닝썬 사건 이후 마약 등의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범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 일명 버닝썬법이 추진되기도 했다.

20대 국회 때인 20194월 김영호 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마약 등의 약물을 이용해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강간하는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20대 국회가 끝나면서 폐기됐다. 여전히 국내에서는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는 가중 처벌되지 않는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지난 24일 진행된 물뽕과 마약에 의한 성폭력 해결방안간담회에서 약물 성범죄는 특수강간 상해 형량이 내려져야 하며, 이에 관한 특례법을 신설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시 김선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GHB는 대사·배설이 빠른 것도 문제지만, 생체에 존재하는 내인성 물질이라며 “12~24시간 이내 시료가 채취돼야 하는데 단기기억상실 등으로 신고가 지연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GHB 등 약물에 의한 성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데도 피해자가 의식을 회복하고 나면 이미 약물이 체내에서 배출된 후라서 범죄를 입증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3, 소개팅 앱을 통해 만난 여성들에게 GBL을 탄 술을 권해 의식을 잃으면 성폭행을 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약사가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이는 GBL을 이용한 성범죄의 첫 번째 유죄 사례다.

지난 해 3, 약사 A씨가 권한 술을 마신 여성 B씨는 의식을 잃었고, 성폭력이 발생하는 도중에 의식을 차려 달아나 곧바로 경찰서로 갔다. 약물이 체내에 남아있을 때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던 매우 이례적인 경우였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아동 청소년 관련 기관 등 취업 제한 5년 및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수강을 명령했다.

2심 재판부도 A씨가 피해자들과 합의했으나 그의 범죄가 사회적 위험도가 너무 커서 합의나 전과 여부와 관계없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노란색 겔이 GHB와 반응해 빨간색으로 변한 모습(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제공)
노란색 겔이 GHB와 반응해 빨간색으로 변한 모습(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제공)

4, GHB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는 소식도 들렸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감염병연구센터 권오석 박사팀과 안전성평가연구소 김우근 박사팀이 개발한 겔(gel)GHB에 반응하면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변한다. GHB가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11(마이크로그램) 농도에까지 반응한다.

연구진은 GHB와 함께 ‘3대 강간 약물로 꼽히는 케타민, 벤조디아제핀을 검출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이렇게 GHB 등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들도 마련되고 있다. 인천남동경찰서는 지난 727일 전국 최초로 마약류 검사 시약 스티커를 시민들에게 배포했다.

이 시약 스티커는 의심되는 술이나 음료를 손가락 끝에 소량 적셔 검사용 스티커 표면에 갖다 대면 1분 이내에 나타나는 색 변화를 통해 GHB 성분의 포함 여부가 판별된다. 명함 크기의 카드 1장에 8개의 스티커가 붙어있어 필요할 때마다 1개씩 떼어 사용하면 된다.

성범죄는 점점 대담하고 교묘해지고 있다.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가 가중 처벌되지 않는 것은 문제적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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