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기는 임신・출산 과정에서

업무상 재해로부터 충분히 보호를 받아야

임신한 간호사 15명 중 5명이 유산, 4명이 선천성 질환아 출산

여성 근로자가 임신 중 업무로 인해 선천성 장애를 가진 자녀를 출산했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된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제주의료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A씨 등 4명이 “요양 급여 신청을 반려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29일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10년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하며 임신한 간호사 15명 중 5명이 유산을 하고,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이들의 유산율은 평균 대비 2배였고, 심장질환아 출산율은 12.7~14.6배에 달했다.
  
10년 전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은 지금 초등학생인데, 아직도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당시 제주의료원은 간호사들이 약품 분쇄작업을 했다. 임신 간호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간호사들은 작업시 거의 대부분 장갑이나 마스크와 같은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았다. 간호사들의 약품 분쇄작업은 2011년 폐지됐다.

제주의료원은 2011년 노사합의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역학조사를 의뢰했는데, 조사 결과 제주의료원에서 사용된 약품들 중에 FDA X등급은 17종, D등급은 37종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들 약품도 분쇄 과정에서 간호사들에게 노출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FDA X등급은 동물실험 및 임상시험에서 태아 독성이 확인되었거나 기존에 기형을 유발한 약물로 위험성이 유효성보다 큰 약물로 알려져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도 제주의료원에서 사용한 FDA X등급, D등급 약품들을 파악했다. 프로스카(X등급, Finasteride)는 임산부가 접촉하면 태아의 남성생식기 기형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고, 카마제핀(D등급, Carbamazepin)은 임산부가 복용할 경우 선천성 심장기형의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산아 선천성 질환을 업무상 재해로 판단 최초 판례

A씨 등 간호사들은 이런 역학조사 결과를 토대로 “임신 초기에 산모와 태아의 건강에 유해한 요소들에 노출돼 태아의 심장 형성에 장애가 발생했다”며 업무상 재해를 주장하고, 요양급여를 청구했다. 공단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이들은 지난 2014년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간호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아이들의 선천성 심장 질환의 발병과 A씨 등의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넉넉히 추단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원고 패소 판결했다.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은 근로자 본인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1심과 2심의 판결이 극명하게 갈린 가운데 대법원 판결에 관심이 집중됐다.

대법원은 29일 간호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소송이 제기된 지 6년 만에 나온 판결이다.

대법원은 “여성 근로자와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 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출산 이후에도 모체에서 분리돼 태어난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등에 관해 요양 급여를 수급할 수 있는 권리가 상실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는 여성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태아의 건강 손상이나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이 포함된다고 판단한 최초 판례다.

지금까지는 근무 중 유산을 한 여성에게만, 그 인과관계가 입증될 때 산재가 인정됐다. 현행법은 태아가 잘못돼 유산을 해야만, 극단적인 표현으로 아이가 죽어야만 산재로 인정한 것이다.

자신의 업무 환경 탓에 심장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에게 엄마들은 너무 미안했을 것이다. 
엄마들은 그런 애절한 마음으로 지난 6년 간의 긴 소송을 버텨냈다. 

제주 간호사들은 10년 만에 웃었다. 하지만 아픈 아이들은 어쩌면 평생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할지 모른다. 엄마들의 어깨는 여전히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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