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1년, 여성법안과 여성의 삶③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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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316일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 박사방운영자인 조주빈이 검거되면서 우리 사회는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비로소 인식하게 됐다.

조주빈은 20192월부터 검거되기 직전인 지난 해 2월까지 여성 피해자 수십 명을 협박해 성 착취 영상물을 촬영해 판매·유포한 혐의와 이를 위해 범죄단체를 조직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총 징역 45년을 선고받았다.

조주빈 이전의 디지털 성범죄자들은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사법부와 검찰도 디지털 성범죄를 강력범죄로 인식하지 않았다.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성착취물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불법 성착취물 20만 개를 유통한 다크웹 운영자 손정우는 불과 징역 16개월을 선고받았다. n번방 운영자켈리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가 n번방 사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커지자 검찰이 재수사를 거쳐 그를 다시 기소한 끝에 1심에서 징역 4년이 선고됐다.

20대 국회도 디지털 성범죄에 무관심했다. 조주빈이 체포되고 나서야 여야 할 것 없이 디지털 성범죄 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그리고 지난 해 5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성폭력처벌법·정보통신망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등 이른바 ‘n번방 방지법’ 6개 법안이 통과돼 겨우 체면치레를 했다.

여기에는 불법 촬영물을 저장만 해도 처벌되며, 불법 촬영물에 대한 삭제ㆍ차단 조치를 의도적으로 이행하지 않으면 위반 행위의 중대성을 판단해 매출액의 3%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되는 조항이 포함됐다. 이 법안들은 지난해 1210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n번방 방지법 시행 후에도 디지털 성착취물들은 플랫폼을 바꿔 여전히 공유되고 있고, 특히 해외 서버를 통해 유통되고 있는 영상들은 행정 관할권 문제로 실질적인 삭제 조치가 어려워 피해자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출처-의원 블로그)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출처-의원 블로그)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한 35603건의 디지털성범죄물 가운데 삭제 조치된 것은 단 22건이었다. 나머지 35526건은 국내 접속 차단조치를 받는데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허은아 의원이 발의한 ‘n번방 대응 국제협력 강화법’(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2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해외소재 디지털성범죄물 삭제의 길이 열릴 전망이다.

이 법안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해외당국·사업자 등과 적극적 공조 및 협력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직무 범위에 국제협력을 추가해 디지털 성범죄물 등 불법유해정보의 유통방지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해 129일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 유포 피해에 대해 피해자와 가족 뿐 아니라 대리인을 통해서도 국가에 삭제지원을 요청할 수 있게 된다. 또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물 외에 이미지 합성기술(딥페이크)을 이용한 허위영상물이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등도 삭제지원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조주빈을 비롯한 n번방 운영자들에게 중형이 내려지면서 디지털 성범죄가 잠잠해지는 것 같았지만, 최근에 다시 온라인을 통한 아동·청소년의 성착취가 늘기 시작했다. 바로 온라인 그루밍이다.

출처-한국여성인권진흥원 블로그
출처-한국여성인권진흥원 블로그

온라인 그루밍이야말로 디지털 성범죄의 시작이자 전형이다. 대상을 정해 대화, 칭찬과 다독임 등을 통해 심리적 유대관계를 형성한 다음 성울 착취하는 범죄 행위인 온라인 그루밍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동·청소년들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SNS, 게임, 메신저 등을 통해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여가부의 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에서 지난 3년간 인터넷을 통한 원치 않은 성적 유인 피해를 경험했다는 비율이 11.1%나 됐다. 이렇게 온라인 그루밍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는데도 그동안은 강간이나 성착취물 제작 범죄가 발생하기 이전에는 이런 행위를 처벌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19세 이상의 성인이 온라인에서 아동·청소년을 성적으로 착취할 목적으로 대화로 유인하거나 성적인 행위를 유도하는 행동을 하면 처벌받게 된다.

국회는 이런 내용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 226일 의결했다. 21대 국회에서 권인숙, 진선미, 양금희, 황보승희 등 4명의 여성 의원이 각각 발의한 법안들을 통합조정한 법률안이다. 이 법은 924일부터 시행된다.

이 법률안에는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를 사전에 예방하고 증거능력 있는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경찰의 위장수사를 허용하는 수사특례규정도 들어있다. 경찰은 신분을 밝히지 않고 범죄자에게 접근해 증거와 자료를 수집할 수 있고, 필요하면 법원의 허가를 받아 미성년 여성 등으로 신분을 위장해 수사도 할 수 있다. 특히 신분 위장수사를 위한 문서와 도화, 전자기록 등의 작성, 변경 또는 행사까지도 허용될 수 있다.

성범죄 유형별 피해 아동 청소년 비율
성범죄 유형별 피해 아동 청소년 비율

성폭력 피해자 연령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019년 유죄판결이 확정된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를 분석한 결과, 13세 미만 피해자는 201623.6%에서 201930.8%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 나이에 경험한 성범죄 피해는 정신적신체적 성장과 건강한 성적 가치관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16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을 사는 행위 등을 한 경우 그 죄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 할 수 있도록 하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지난 해 122일 국회를 통과해 오는 69일부터 시행된다.

()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 연이어 발생한 지자체장 성폭력 사건 처리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조직 내 구성원들로부터 2차 피해를 입어 논란이 일었다. 이렇게 직장 내 성범죄 피해자들은 피해사실이 알려진 후 2차 피해나 조직 내에서 불이익을 입는 억울하고 불합리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피해를 줄이고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발의된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지난해 9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성폭력 피해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람은 성폭력과 관련해 피해자를 해고하거나 그 밖의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해고 외에 다양한 불이익에 대한 구체적인 명시가 없어 불이익 금지 규정을 구체화했다.

또한 같은 날 통과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신상 및 사생활 비밀 누설 등 2차 가해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다.

두 법안 모두 지난 120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밖에 인신매매ㆍ착취방지와 피해자보호등에 관한 법률안’(2021324일 국회 통과)인신매매의 개념을 매매만이 아닌 모집, 운송, 은닉 등을 추가해 성매매 착취, 성적 착취, 노동력 착취, 장기적출 등을 목적으로 사람을 모집, 운송, 전달, 은닉, 인계 또는 인수하는 인신매매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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