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가 곧 그들이었다

남편은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을 쓴 당대 최고의 작가였고, 아내는 춤과 그림, 글에 재능이 있었으며 영화배우 제의를 받았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 정도면 모두가 부러워하는 예술인 부부를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다 40대에 요절한 이 부부의 말로는 남편은 술 없이는 한 글자로 쓸 수 없는 심각한 알콜중독자였고, 아내는 죽을 때까지 18년 동안 정신병원을 전전했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젤다 피츠제럴드 부부(출처-위키피디아)
스콧 피츠제럴드와 젤다 피츠제럴드 부부(출처-위키피디아)

이 두 사람은 바로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와 젤다 피츠제럴드(1900-1948). 멋진 외모와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두 사람이 비극적인 상태로 삶을 마친 이유는 무엇일까? 두 사람이 서로를 망치는 파괴적인 관계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스콧 피츠제럴드의 많은 작품들 중 위대한 개츠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제목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대학 영문학 강의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작품인데, 그런 작품성과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출간 당시에는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들었고, 스콧에 죽은 후 10년이 지나서야 조명받기 시작했다.

스콧과 젤다는 1920년대 미국 경제호황기를 누구보다 더 충만하게 누렸고, 이후 경제 대공항 시대를 누구보다 더 처절하게 겪었다. 그러면서 서로 사랑하고 증오하고 집착하고 실망하면서 끝내 이혼하지 않았으면서 그렇다고 함께 하지도 않은 채 젤다가 사망할 때까지 28년 간 부부로 살았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미네소타 출신의 아일랜드계 미국인으로 가톨릭을 믿는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10살 때 아버지가 P&G(프록터 앤드 갬블)에서 실직당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이런 가난은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17살의 스콧은 2살 어린 지네브라 킹과 교제했는데, 그들의 사랑은 시카고의 금융 부호였던 지네브라의 아버지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를 반대하면서 3년 만에 끝이 났다. 이 때 겪은 실연의 상처는 스콧이 물질적인 삶을 추구하는 계기가 됐고, 그의 작품에도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로 작용했다.

일설에는 스콧은 지네브라와 닮은 젤다와 결혼했고, 젤다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 지네브라를 닮은 애인을 만나는 등 평생 첫 사랑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스콧은 군에 입대했는데, 이 또한 금전적인 어려움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육군 소위로 근무했던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대법원 판사의 딸이 바로 젤다 세이어였다. 젤다와 사랑에 빠진 스콧은 1919년 제대 후 뉴욕의 배런콜리어 광고회사에 입사했고 젤다에게 청혼했다. 그러나 젤다는 스콧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젤다를 포기할 수 없었던 스콧은 문학적 성공을 꿈꾸며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글쓰기에 전념했고, 젤다를 모델로 한 첫 소설 낙원의 이쪽(This side of Paradise)’을 발표해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낙원의 이쪽’표지. 여주인공의 모습이 젤다와 닮았다.(출처-네이버 포스트)
낙원의 이쪽’표지. 여주인공의 모습이 젤다와 닮았다.(출처-네이버 포스트)

낙원의 이쪽1920년에 출판돼 52000부나 팔렸다. 이 작품으로 스콧은 유명 작가 대열에 합류했고, 남부 제일의 미녀로 불리는 젤다와 결혼했다. 책의 제목처럼 낙원이 시작됐다. 스콧이 24, 젤다는 22세였다.

스콧과 젤다의 결혼식(출처-네이버 블로그)
스콧과 젤다의 결혼식(출처-네이버 블로그)

1921, F. 스캇티 피츠제럴드(1921-1986)가 태어났다. 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끝난 후 10여년 동안 미국 경제는 전례 없는 호황을 이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문학과 예술에서도 황금기가 찾아왔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에즈라 파운드, 유진 오닐, 윌리엄 포크너 등과 함께 미국의 문예부흥을 이끌었다.

이 시기에 스콧은 말괄량이 아가씨들과 철학자들’(1920), ‘아름답고 저주받은 자들’(1921),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수록된 재즈 시대의 이야기’(1922), ‘위대한 개츠비’(1925)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명성과 부를 얻은 스콧과 젤다는 뉴욕 사교계에 진출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첫 사랑에 실패했고, 젤다로부터 거절도 당했던 스콧은 물질적 성공을 거두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대중적인 성공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풍요와 사치를 향유했다.

미국의 호황기였던 1920년대는 스콧과 젤다 부부에게도 인생의 호황기였다. 무성영화시대의 대배우 릴리안 기시(1893-1993)의 말처럼. “1920년대가 곧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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