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이었다, 소설처럼

스콧과 젤다의 결혼생활은 파리에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헤밍웨이의 파리 회고록에서 부부의 갈등이 언급되기도 했다. 1924년 젤다는 에두라르 조잔이라는 프랑스 비행기 조종사와 연애를 했고,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스콧은 한 달 간 젤다를 집에 가두고 이혼 철회를 요구했고, 이후에도 부부 싸움은 계속됐다.

스콧과 젤다 피츠제럴드 부부(출처-네이버 블로그)
스콧과 젤다 피츠제럴드 부부(출처-네이버 블로그)

1927년 이번에는 스콧이 17살 배우 로이스 모선과 바람을 피웠다. 스콧이 할리우드 영화사의 일을 시작하고 난 다음이었다. 스콧이 루이스를 만나러 가자 젤다는 욕조에 옷을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부부 사이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두 사람은 상대를 전적으로 사랑하지도, 신뢰하지도 않았고, 서로를 끊임없이 할퀴고 상처내면서 결과적으로 자신이 더 상처를 입었다. 아내는 다른 남자와 연애를 했고, 남편은 그런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자 거부하면서 자신도 바람을 피웠다. 집착적이면서도 파괴적인 관계였다.

미국의 호황기였던 1920년대를 화려하게 보낸 부부에게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1929년 경제대공황이 닥치면서였다. 호화로운 생활의 결과는 엄청난 빚으로 되돌아왔다. 더구나 젤다의 신경쇠약이 악화되고 있었다.

젤다가 단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진 것만은 아니다. 개성 강하고, 예술적 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젤다에게는 사회활동을 할 기회가 많았다.

1927년 경 젤다는 영화배우 제안을 받았지만, 스콧이 반대해서 무산됐다. 어릴 때부터 발레에 재능이 있었고, 전문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3년간 매일 8시간씩 연습했고, 이탈리아 나폴리의 한 발레단에 입단 기회를 얻었으나 이 역시 스콧이 반대했고, 딸을 두고 갈 수 없어 포기해야 했다.

발레연습 중 쉬고 있는 젤다(출처-네이버 블로그)
발레연습 중 쉬고 있는 젤다(출처-네이버 블로그)

스콧과 친밀하게 교류했던 헤밍웨이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통해 젤다가 재능있는 남편을 시샘하고 방해하고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스콧도 아내인 젤다가 유명해지는 것을 원치 않아 날개를 꺾어버린 것이라는 뭇사람들의 추측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스콧은 첫 소설 낙원의 이편에서 젤다를 여주인공으로 삼았고, 이후 위대한 개츠비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젤다의 이미지를 다양하게 변주했다. 젤다의 개성과 재능, 재치있는 말과 행동은 소설에 담아내기에 충분히 매력적이고 흥미로웠다.

심지어 스콧은 젤다가 일기와 편지 속에서 썼던 글들도 표절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위대한 개츠비에서 여주인공 데이지의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대사들이다.

딸이라서 다행이야. 저 애가 바보가 되면 좋겠어. 이 세상에서 여자는 예쁘고 작은 바보로 지내는 게 최고니까. 그거 알아? 나는 이 세상 모든 게 끔찍해.”

이 대사는 젤다가 딸 스캇티를 낳고 쓴 일기의 한 대목이다. 젤다는 딸이 여자로서 자신과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을 우려했다.

스콧의 첫 소설 낙원의 이쪽이 예상 밖의 큰 성공을 거두면서 갑작스럽게 이뤄진 결혼, 술과 파티에 절어있던 생활에서 벗어나 생계를 위해 글을 써야 했던 스콧, 그러는 사이 외롭고 무료하기까지 했던 생활, 젤다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상실해가는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 와중에 임신을 했고, 딸을 낳았으니 그런 생각을 할 만 했다.

스콧은 소설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The Beautiful and Damned)’(1922)에 젤다의 일기를 차용했는데, 편집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조지 네이선(George Jean Nathan)은 젤다의 일기를 젊은 아가씨의 일기(A Young Girl’s Diary)’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자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이번에도 스콧은 반대했다.

남편의 이런 대응에 가만있을 젤다가 아니었다. 그녀는 뉴욕 트리뷴에 실은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의 서평에 미스터 피츠제럴드, -그의 이름이 정확하다면- 그의 표절은 집안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보여지는군요.”라며 남편을 힐난하는 듯한 내용을 넣었다.

스콧은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이 출판된 몇 년 후 젤다에게 보낸 편지에서 좀 더 정교하게 써야 했다고 후회하고 있어. 왜냐하면 그건 모두 사실이었거든. 우리는 서로를 망쳐버린 거지. 하지만 그때는 우리가 서로를 파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어라고 털어놓았다.

그의 말대로라면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결혼생활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세간의 소문이 사실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부부 관계의 균열은 그때 이미 생기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앨라배마의 ‘스콧&젤다 피츠제럴드 뮤지엄’에 전시돼 있는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 출판본(출처-네이버 블로그)
미국 앨라배마의 ‘스콧&젤다 피츠제럴드 뮤지엄’에 전시돼 있는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 출판본(출처-네이버 블로그)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은 스콧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주인공인 앤서니와 글로리아 패치 부부는 뉴욕에서 파티를 열고 황홀하고 짜릿하게 살고 있다. 앤서니는 자산가인 할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기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하는 일 없이 아내와 함께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기대했던 유산은 받지 못하고 결혼생활마저 퇴색해가자 앤서니는 결국 알콜중독과 우울증, 신경쇠약을 겪으며 무너져간다.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은 스콧과 젤다 부부였다. 어쩌면 스콧은 화려한 시대, 향락에 젖은 삶의 불안한 종말을 예견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도 왜 그는 그 속으로 점점 빠져든 것일까. 부잣집 딸로 나고 자라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젤다의 마음을 붙들기 위함이었을까.

스콧의 내면에 잠재돼 있는 심리는 젤다에 대한 열등감과 불안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젤다보다 나은 점은 유명한 작가라는 것뿐, 그래서 젤다가 예술가로서 활동하게 되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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