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글쓰기를 방해한 젤다, 헤밍웨이의 말은 사실일까?

젤다는 알라바마에서 할아버지는 상원의원과 주지사, 아버지는 대법원 판사, 삼촌은 상원의원을 지냈을 정도로 부유한 명문가의 딸이었다.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아니 넘칠 정도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유롭게 자란 젤다는 대담하고 자기주장이 강했다. 10대 때부터 술과 담배, 남자 아이들을 가까이 했고 나체로 다이빙하는 모습이 지역 언론에 실렸다고 하니 보통의 남자가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스콧은 젤다의 이런 성향과 기질에 반했다고 한다. 더구나 젤다는 아름답기까지 했다. 젤다는 스콧이 글을 쓰게 하는 동기를 부여했고, 그의 성공욕에 불을 붙였다.

스콧과 젤다 피츠제럴드, 그들의 딸 스캇티(출처-위키피디아)
스콧과 젤다 피츠제럴드, 그들의 딸 스캇티(출처-위키피디아)

1924년 스콧과 젤다는 파리로 건너갔다. 스콧은 파리에 머물며 거트루드 스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에즈라 파운드 등과 함께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으로 활동하며 당시 시대정신을 작품에 담아냈다.

로스트 제너레이션은 제1차 세계대전 후 환멸을 느낀 미국의 지식 계급과 예술파 청년들을 가리키는 말로 헤밍웨이가 자신의 첫 작품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1926)의 서문에 당신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의 사람들입니다라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당대를 대표하는 용어가 됐다.

파리에서의 스콧과 젤다의 모습은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2011)를 통해 상상할 수 있다. 약혼녀 가족과 파리 여행을 온 시나리오 작가 길은 파리의 밤거리를 걷다가 종소리와 함께 나타난 차에 올라타면서 1920년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과 만나게 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등장하는 스콧(톰 히들스턴)과 젤다(알리슨 필) 피츠제럴드 부부(출처-네이버 블로그)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등장하는 스콧(톰 히들스턴)과 젤다(알리슨 필) 피츠제럴드 부부(출처-네이버 블로그)

영화에서 젤다는 술을 좋아하고 신경질적으로 묘사되고, 스콧이 젤다에게 휘둘리는 장면도 나온다. 항간에 알려져 있는 젤다의 모습 그대로다.

대중에게 각인된 젤다의 이런 모습은 스콧과 친밀했던 헤밍웨이(1899-1961)의 영향이 크다. 헤밍웨이는 1921년 신문사 해외특파원으로 갔던 파리에서 스콧을 만났다. 헤밍웨이의 재능을 알아본 스콧은 뉴욕의 한 출판사에 그를 소개하기도 했다.

헤밍웨이도 스콧의 재능을 무척 아꼈다. 특히 위대한 개츠비’(1925)를 극찬했고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도 했다. 이후 스콧이 술과 방탕한 생활에 젖어 작가로서 빛을 잃어가게 되자 헤밍웨이는 그 원인을 젤다에게서 찾았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1921~1926년까지 5년간의 파리 생활 회고록 파리는 날마다 축제’(1960)에서 스콧과 젤다 부부를 회상했다. 헤밍웨이가 스콧의 아파트에 가면 글에 전념하기 위해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스콧은 젤다에게 흥을 깨는 사람 취급을 당했다. 또 스콧이 영감이 떠올라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젤다는 그를 끌어내 술자리에 앉혔다. 두 사람은 싸우고 술로 화해하는 일을 반복했다. 이런 일들을 통해 헤밍웨이는 젤다가 재능있는 남편을 시샘하고 방해하고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레고리 펙이 주인공 해리로 나온 1952년 영화 ‘킬리만자로의 눈’포스터 (출처-시네21)
그레고리 펙이 주인공 해리로 나온 1952년 영화 ‘킬리만자로의 눈’포스터 (출처-시네21)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1936)은 술, 여자, 물질의 유혹에 빠져 작가로서의 재능을 탕진하면서 방탕하게 살던 해리가 괴저병(비브리오 패혈증)에 걸려 다리가 썩어들면서 죽어가는 동안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스콧이 등장하는데, ‘가난한 스콧이 돈이 많은 부자들은 당신이나 나 같은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스콧의 단편 부잣집 아이에 나오는 대목을 헤밍웨이가 인용한 것이다. 스콧이 수정을 요구해서 헤밍웨이는 스콧을 줄리언으로 바꿨다는 일화가 있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이 소원해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헤밍웨이의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스콧이 글을 쓸 수 없었던 이유가 아내가 아닌 파리 때문이라고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파리는 글을 쓰기에 완벽해서 스콧은 글을 쓸 수 있는 다른 도시를 늘 갈망했다고 한다.

풍요는 자칫 방만과 나태로 이어진다. 스콧과 젤다에게 풍요는 마음의 충만함이 아닌 공허함을 가져왔다. 사치스러운 생활 속에 정신은 고갈됐다. 파리에서 스콧이 글을 쓸 수 없었던 이유는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헤밍웨이는 스콧이 글 쓰는 것을 젤다가 방해했다고 언급했지만, 두 사람 모두 상대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몰랐던 것 같다.

스콧은 부유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글을 썼다. 그것이 젤다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젤다가 스콧을 자꾸 술자리에 앉혔던 것은 함께 하고 싶다는 의사 표현은 아니었을까? 많은 사람과의 교류, 화려한 파티의 연속이었던 생활에서 정작 부부가 온전히 함께 하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파리에서 스콧은 자신의 대표작이자 미국 문학사의 걸작이기도 한 위대한 개츠비를 발표했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2013)의 한 장면(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위대한 개츠비’(2013)의 한 장면(출처-네이버 영화)

가난한 청년 개츠비는 명문가의 딸 데이지를 사랑했으나 신분 차이로 헤어지고, 5년 후 벼락부자가 되어 다시 나타났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살고 있는 웨스트에그 반대편인 이스트에그에 대저택을 짓고 매일 밤 화려한 파티를 열어 데이지와 재회할 기회를 엿본다.

데이지는 전쟁에 나간 개츠비를 기다리지 못하고 비슷한 명문가 출신 톰과 결혼했다. 개츠비는 이미 유부녀가 된 데이지를 여전히 갈망하며, 밤마다 그녀의 집 쪽에서 새어나오는 초록색 불을 계속 바라본다.

데이지는 젤다에게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캐릭터라고 한다. 파티광이었고, 플래퍼(1920년대의 자유분방한 여성)이었던 젤다의 이미지가 데이지를 통해 그대로 구현됐다. 하지만 개츠비가 가난했기 때문에 데이지와 헤어져야 했고, 그녀를 되찾기 위해 부를 축척했던 개츠비의 모습은 가난 때문에 첫 사랑에 실패하고 아내인 젤다와도 가까스로 결혼했던 스콧의 실제 삶과 비슷하다. 스콧은 결국 젤다와 결혼했지만, 개츠비의 사랑은 그의 죽음으로 실패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돈이 없어 첫 사랑을 잃었던 개츠비는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큰 부자가 됐지만,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개츠비가 죽은 후 죄책감 없이 살아가는 데이지와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서 개츠비의 사랑이 허무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던 한 남자의 인생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개츠비의 사랑이 바로 스콧이 지향했던 사랑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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