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성에 갇혀 함께 할 수 없었던 부부

드라마 ‘제트-모든 것의 시작(Z-The beginning of everything)는 젤다를 중심으로 부부관계를 풀어갔다.(출처-유튜브)
드라마 ‘제트-모든 것의 시작(Z-The beginning of everything)는 젤다를 중심으로 부부관계를 풀어갔다.(출처-유튜브)

거듭되는 좌절과 상실 속에 젤다의 정신은 더욱 쇠약해졌다. 1930년경, 젤다는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18년에 걸친 긴 병력의 시작이었다. 스콧은 젤다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글을 써야 했다. 생계형 작가가 된 셈이었다.

1933년 그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자 사실상 유작이 된 밤은 부드러워(Tender is the night)’가 출간됐다. 정신과 의사인 딕 다이브, 신경쇠약에 걸린 그의 아내 니콜, 신인 여배우 로즈메리의 삼각관계가 중심 줄거리다.

열여덟 살의 영화배우 로즈매리는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령 리비에라로 휴가를 갔다가 미국인 심리학자 딕 다이버와 그의 아내 니콜을 만난다. 로즈마리는 딕과 사랑에 빠지고, 그들은 짧고 강렬한 행복을 누리지만, 니콜의 신경쇠약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그들의 삶은 무너져간다.

누가 봐도 자전적 색채가 농후하다. 한 때 별처럼 빛나던 사람들의 몰락, 덧없는 삶, 처연하고 가슴 먹먹한 스토리는 스콧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 애증의 관계가 되어버린 젤다에 대한 심경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샐리 클라인의 ‘젤다 피츠제럴드: 천국에서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출처-아마존)
샐리 클라인의 ‘젤다 피츠제럴드: 천국에서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출처-아마존)

전기 작가 샐리 클라인이 젤다와 스콧이 남긴 편지와 기록들,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 등 6년여의 조사 끝에 젤다의 전기 젤다 피츠제럴드: 천국에서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Zelda Fitzgerald: Her Voice in Paradise Hardcover)’를 출간했다.

이에 따르면 스콧은 젤다와 함께 쓴 작품에서 젤다의 이름을 지웠고, ‘부부 사생활을 지나치게 드러냈다는 이유로 젤다의 작품을 검열하고 훼손했고, 그녀의 창작활동을 방해하고 협박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젤다는 정신병원에서도 예술적 재능을 발휘했다. 1932년 병원에서 소설왈츠는 나와 함께(Save Me the Waltz)’를 써서 남편 몰래 출판사에 보냈는데, 이를 알게 된 스콧은 매우 화를 냈다고 한다.

스콧은 당신이 작가이거나 아니거나 난 관심없어. 비록 작가라 할지라도 당신은 삼류 작가일 뿐이야. 우리가 함께 한 모든 것들은 다 내 것이야. 당신과 내가 함께 했더라도 나는 전문직 작가야. 당신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나라고. 때문에 모두 내 작품들의 소재들이라고. 당신의 것은 아무것도 없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스콧은 젤다를 종속적인 존재로 봤고, 그녀의 재능과 개성을 비하했다.

젤다는 정신병원을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지만, 병세는 악화됐다. 억눌린 예술혼, 남편의 방해와 경멸로 인한 절망감 등이 그녀의 정신을 좀먹었다.

젤다가 정신병원에서 그린 그림들(출처-네이버 블로그)
젤다가 정신병원에서 그린 그림들(출처-네이버 블로그)

젤다는 1922년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11편의 단편소설과 12개의 신문기사를 썼다. 단편소설 오리지널 폴리스 걸’, ‘재능 있는 여자등에서는 열정과 꿈을 이루지 못한 삶에 대한 회한이 담겨있다.

이제부터 내 정신이 망가질 정도로 열심히 연마해서 아주 훌륭한 댄서가 될 생각이에요.”(‘재능 있는 여자중에서)

또 문체는 감각적이고도 과감하다. “극장 매니저들에게는 섹시함으로, 안목 있는 관객에게는 육체적 흡인력으로, 공연계의 저속한 방면에 널리 퍼져 있는 적들 사이에서는 재능 부족으로 통하는 특징이었다.”(‘재능 있는 여자중에서)

스콧에게 젤다는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었다. 군인이었다가 광고회사 직원이 된 스콧이 소설가가 된 것은 젤다와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젤다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계속 글을 쓰면서 스콧의 창작열과 재능은 고갈돼 갔다.

결국 술의 힘을 빌려 글을 쓰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혈을 기울였던 밤은 부드러워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결국 1930년대 후반에는 할리우드로 가서 영화 대본을 쓰기도 했다.

재산은 이미 탕진했고, 젤다의 병원비와 딸 스캇티의 학비를 벌려면 쉴 수 없었다. 점점 더 독한 술에 빠져들었다.

스콧 피츠제럴드(출처-위키피디아)
스콧 피츠제럴드(출처-위키피디아)

의사는 그가 술을 끊지 않으면 1년 내에 죽을 것이라고 진단했고, 술을 줄였다는 게 매일 맥주 20병을 마셨다니 온전한 정신인 때가 드물었다. 스콧 자신도 맨 정신으로 쓴 소설들은 시시해. 그건 감정 없이 이성으로만 쓴 글이라 그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스콧와 젤다의 결혼기간 20년 중 온전한 가정에서 가족이 함께 했던 시간은 10년에 불과했다. 이후 10년은 서로에게 계속 상처와 고통을 주며 껍데기만 부부로 살았다. 스콧은 끝까지 젤다의 병원비를 대느라 늘 허덕였고, 젤다는 스콧에 의해 꿈과 희망을 잃었다.

1920년대를 아름다고 화려하게 살았고, 1930년대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웠으며, 1940대에 들어서 비극적인 삶의 종말이 찾아왔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연인인 실라 그레이엄 웨스트브룩과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940, 그의 나이 44살이었다. 실라는 어린 시절의 젤다를 많이 닮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8년 후인 1948, 젤다는 노스 캐롤라이나 애쉬빌의 하일랜드 정신병원에서 화재가 나 사망했다. 1970, 낸시 밀포드의 젤다 평전인 ‘Zelda: A Biography’가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젤다는 소설가이자 예술가로서 재조명됐다.

젤다는 죽어서야 비로소 남편 곁에 당당하게 설 수 있었던 셈인가. 두 사람은 예술적 동지로서 함께 걸어갈 수는 없었던 것일까.

스콧과 젤다 부부, 그들의 딸 스캇티(출처-네이버 블로그)
스콧과 젤다 부부, 그들의 딸 스캇티(출처-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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